빨갛고 동그란 불이 반짝반짝

by 최희정

"주목나무의 열매가 빨갛게 익었어."

너에게 이 사진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하지는 않았어.


내가 가끔 한강 다리 위에 떠 있는 멋진 구름을 찍은 사진이라던가, 오후로 빛나는 강물이 몸을 펄떡거리면서 잔 비늘을 털어내는 사진을 보냈던 것은,


그건 바람이 좋다고 전화했던 그때 그 밤 네 마음 그거랑 같은 건데 바쁠 때 그런 연락이 오면 신경 쓰인다는 말에 의기소침해졌거든.


그렇게 말하거나 말거나 천진하게 툭, 난만하게 쓱,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네게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입어본 적이 없는 반짝이가 많이 달린 옷처럼 어색해서 그것도 못해.


그래서 주목나무에게 말을 했지.


"네가 가서 오늘의 안부를 전해줄래?"


그랬더니 초록 깃털 같은 잎이 잔뜩 돋은 가지에 달려 있던 작고 붉은 열매들에 불이 켜지더라. 빨갛고 동그란 불이 나무의 정수리에서부터 반짝, 어깨를 밝히면서 반짝, 배꼽을 살짝 드러내면서 반짝.


나무의 잔가지들은 열매의 진주홍 반쪽을 모아 굵은 가지에게 전하고, 굵은 가지는 몸통에게, 몸통은 뿌리에게 전했어. 뿌리는 땅 속을 연결하는 전깃줄이 되어 네가 있는 곳까지 전기를 보냈고.


아주 오래 느리게 일하는 뿌리지만 이런 일은 순식간에 해치우나 봐.


네게서 주목나무에 빨갛고 동그란 불이 켜졌다고 사진이 왔어.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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