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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Dec 09. 2022

달빛 화양연화

달빛 화양연화     

“그때가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것 같아.”     

당신의 이 말을 듣고 난 의아했지. 만나서 밥이나 먹고 호수공원이나 같이 걸었던 게 전부였잖아. 가끔 같이 술도 마시고 음악도 즐기고 했지만 그건 뭐 친구 사이에도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옆에서 보기에는 연애라고 하기엔 너무 맹숭하고 심심했거든.      


화양연화라고 하면 흔히 꽃 시절을 얘기하잖아. 햇살 눈 부신 봄날 그런 거. 생생한 물기 머금은 꽃이 피는 그런 때. 당신이 말하는 화양연화는 눈이 부실 정도의 꽃 시절은 아니었거든. 그저 하루하루를 같이 하는 따뜻함이었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함이란 거. 그건 삶의 그늘을 녹지근 덥혀주는 거지. 인생의 쓸쓸한 틈을 사르르 메워주는 거고. 놀이동산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 따뜻함에 기대 한 시절을 잘 건넜다면 그건 봄날이 맞아. 꽃 시절인 거고.     


어제는 보름달이 밝더라. 달의 뒷면을 여행해보고 싶다던 당신의 그 사람이 생각났어. 지구를 떠난 그는 달에 도착했을 거야. 가보고 싶다던 달의 뒷면에서 기지국을 만들고 있을지도 몰라. 아직 지구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거기에서 높게 안테나를 세우고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그 신호는 조만간 당신에게 닿을 거야.      


달이 둥근 밤이거나 여윈 밤이거나, 아예 빛을 감추고 모습을 감춘 밤에도 달은 항상 지구를 보고 있거든. 그는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고. 그러니 그때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과 가을 당신과 함께했던 따뜻함의 씨앗을 달의 뒷면에 심고 있을 거야.   

   

그는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매일 보살필 거야. 여기 지구에서 당신을 매일 보살폈던 것처럼. 씨앗에서 뿌리가 나고 싹이 트면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을 세워줄 거야. 여기에서 지친 당신이 쓰러지지 않게 잡고 있었던 것처럼. 잎이 마르지 않게 물도 먹이겠지. 그때 당신에게 밥을 먹였던 것처럼.      


그리고 꽃이 피면 꽃 옆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을 거야. 당신 곁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지켜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때의 따뜻함이 다시 달에서 꽃으로 피어날 때 달의 뒷면도 환하게 밝아지겠지. 당신은 볼 수 없겠지만 그는 높게 세운 안테나를 통해 당신에게 소식을 보낼 거야.      


저녁 바람이 붉어질 때 문득 그가 생각난다면, 만둣국 한 그릇에 그가 떠오른다면, 소주 몇 잔에 혹은 음악 몇 자락에 그가 보고 싶다면 그건 분명 달의 뒷면에서 온 그의 소식일 거야. 거기서 따뜻하게 잘 지낸다고 당신도 여기서 따뜻하게 잘 지내라는 안부일 거야,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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