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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Dec 23. 2022

김은호의 소설, 리모델링

불빛 화려한 정글, 백화점의 지하 1층에서 살아남기


  

백화점은 말 그대로 백 가지로 비유된 다양한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모인 곳이다. 옷을 비롯해 온갖 물건이 다 있다. 대부분의 백화점은 지하 1층에 수많은 식품 매장이 들어서 있다. 김은호의 이 소설은 바로 이 백화점 식품 매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다.      


은련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서 베이커리를 하는 윤하, 샐러드 가게를 하는 성현, 롤초밥 매장을 하는 이 사장, 그리고 죽집을 운영하는 최 사장이 주인공이다. 우리가 사는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가게들이고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돈을 내고 장사를 하지만 백화점이 정한 법에 따라야만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 그나마 1년짜리 단기 계약이다. 이 계약을 유지해서 계속 장사를 하려면 백화점이 내미는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들을 감수해야 한다. 눈뜨고 코 베가는 수준의 요구들이다.     


백화점은 공간을 새로 단장해 손님을 유치한다는 목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리모델링을 한다. 하지만 백화점이 돈을 내지는 않는다. 순전히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몫이다. 싫으면 계약 종료하고 나가라는 태도다. 뻔뻔하다.      


마감 세일 시간에는 손해를 감수하고 할인 판매를 해야 한다. 재료비며 수수료를 다 제하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어도 백화점 측이 요구하는 원칙 때문에 차라리 손해를 보고 판매를 한다. 물건 일찍 다 팔았다고 일찍 정리할 수도 없다. 백화점의 모양새를 살려주기 위해 물건 없는 빈 매대 바닥이 보이면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그러니 마감 시간이 임박해도 제품을 다시 만들어 채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점을 준다.      


벌점을 받는 것은 재계약에 불리하다. 업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백화점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또 불합리한 리모델링 조건을 보면 자본가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서민의 숨통을 조이고 누르는지 알 수 있다.   

   

은련 백화점에서 이런 일을 앞에 나서서 하는 사람은 세 살짜리 아이가 있는 정대리다. 명찰 떼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다면 그저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여성에 불과한 정대리지만 이곳 지하 매장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자영업자들을 쥐고 짜고 흔든다. 백화점의 이익을 위한 압착기 노릇을 한다.   

   

이 소설에는 구체적으로 서민인 자영업자와 자본가인 백화점이 직접 부딪히는 장면은 없다. 정 대리나 박 팀장 같은 중간 관리자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도 백화점에 문제가 발생하자 바로 해고되고 지방으로 좌천된다. 자본가들은 서민을 이용해 서민을 핍박하고 쓸모없으면 바로 내팽개쳐 버린다. 그들에게 서민은 이익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다.      


백화점의 맨 아래 칸인 지하 1층 식품 매장을 소설의 공간으로 삼은 것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삼각형 맨 아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살아남아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윤하와 그의 동료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소시민이니 공감되는 부분마다 절절하다. 오늘을 내일과 잇대어 놓기 위해 먹이사슬 윗부분에서 요구하는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해내며 근근이 오늘을 버티는 모습이 나와 다를 바가 없다. 읽으면서 억울해서 분통이 터진다. 갑의 횡포에 속이 갑갑하다.      


김은호의 묘사는 생생하다. 아마 작가가 살아온 삶이 녹아 있어서 그럴 것이다. 또 구구절절 사연이 깊다. 이 또한 작가가 살면서 겪은 경험들로 다시 엮여서 그럴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같은 동료끼리 서로 배신하는 사건은 없다. 서로 다독이고 걱정해 준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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