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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18. 2022

졸업


졸업


2월생이라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딸. 키 번호는 맨 뒤였지만 영혼은 어려 어리바리했다. 거기다가 고등학교도 2년만 다니고 대학을 가게 되었다. 중3 때부터 치열했던 공부. 고등학교 가서는 치열하고 버겁기까지 했던 공부. 대학은 더했다. 카이스트, 난다 긴다 하는 애들 모였으니 오죽하랴. 졸업식 날 학교에서 나누어준 팸플릿을 보니 학사보다 석사 졸업생 수가 더 많았다. 

     

“엄마, 우리 학교는 연구학교잖아. 그러니 학사 마치고 곧바로 석사 진학하는 사람들이 많지.” 딸아이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웃음에 나는 목구멍이 찌릿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대전에서 제일 오래되고 유명하다는 중국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짜장면도 시키고 탕수육도 시켰다. 짜장면은 텁텁했고 탕수육은 시금털털했다. 아니 텁텁하고 시금털털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곧바로 석사 공부를 시킬 수 없는 형편이 답답해 자꾸 물만 먹었다. 


그 후로 딸은 연구실 테크니션 아르바이트를 했다. 첫 번째 연구소에서는 박사님이 극지방에서 캐논 돌을 갈아서 물에 타서 성분을 분석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하루의 반나절은 시약 스포이드를 눌러대고 나머지 반나절은 자료를 정리해야 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두 번째로 일했던 연구소는 질병과 관련된 균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일이 많아 출근도 빠르고 퇴근도 늦었다. 그렇게 1년 하고 반년이 더 흘렀다.      


“엄마 나도 다른 애들처럼 카페 알바도 해볼래요.” 연구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서 하는 딸의 말에 “그래”라고 대답은 해놓고 착잡했다. 대학원 가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보다 더 돈이 없던 시절이라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2019년 10월 어느 날, 2년 넘게 카페 아르바이트도 하고 빵집 일도 하던 딸이 이제 다시 공부를 해보겠다고 엄마가 많이 도와 달란다. “그럼, 그럼 엄마가 당연히 도와줘야지. 걱정 마. 엄마가 다 생각해 놓은 게 있지.” 한껏 목소리를 키워 다시 공부하겠다는 딸을 응원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머릿속으로 몇 달 전에 끝난 연금보험을 해약하면 얼마나 찾을 수 있을지를 계산했다. 딸이 바라는 만큼 도와줄 수 없을까 봐 마음이 너무너무 부대꼈다.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도 홍수로 물이 붇듯 마음에 근심이 차올라 넘실거렸다. 마음의 둑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살면서 위기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미리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 없다. 걱정도 마음이 힘을 쓰는 일이라 오히려 마음의 에너지를 미리 소진해버린다는 것. 그래서 막상 일이 닥쳤을 때, 그 일을 해결하기 더 힘이 든다는 것. 하여 걱정하는 마음을 작게 나누어 다람쥐가 도토리를 감추듯 여기저기 묻어버렸다. 그래 닥치면 생각하자.     


며칠 뒤 딸을 다시 만났다. 그동안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연구실이 자꾸 생각나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첫 학기 등록금만 해달란다. 생활비랑 나머지 학비는 알아서 하겠단다. 벌써 전공도 정했고 교수님도 만나 얘기 다 했단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려서 파스타 사주고 기특해서 후식으로 커피도 사주고 이뻐서 집에 가서 먹으라고 빵도 사줬다. 뚠뚠 해져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라는 말을 스물여섯 딸에게 해주고 싶었다.    


  

2022년 2월 

2년 동안 추석날에도 설날에도 연구실을 왔다 갔다 하더니 오늘 드디어 졸업했다. 뚠뚠 해져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많이 튼실해졌다. 연구실 의자는 학생들의 체구를 배양시키나 보다.   

   

종로 필운동 어느 사진관에서 나오신 아저씨의 기념사진 촬영 꾐에 1초 만에 넘어가서 아저씨가 시키는 데로 이런 자세 저런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양팔을 쫘악 벌리면 졸업가운이 독수리 날개 모양으로 변한다는 사진사 아저씨 말에 하하 웃으면서 민망한 듯 팔을 벌리는 딸의 모습을 보는 마음이 흐뭇했다. 그럼 저기 대전에 있는 그 학교는 졸업식 때 거위처럼 흰색 가운을 입고 모자는 거위 부리 색으로 노랗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실없는 농담도 했다.      


커다란 꽃다발도 안겨 주었다. 다양한 모양의 고운 색의 꽃들이 많은 꽃집에 가서 푸른색이 섞인 하얀 튤립 꽃이 들어있는 꽃다발을 선물했다. 꽃값이 제법 비쌌지만 까짓 거 오늘은 괜찮다. 짜장면도 먹고 탕수육도 먹었다. 짜장면은 윤이 자르르 흘렀고 탕수육은 새콤달콤했다.     

 

내게 졸업식 하면 떠오르는 꽃은 노란 프리지어다. 얼마 전에 어느 분께 프리지어를 선물했다. 노랗게 환한 햇살 같은 꽃을 보며, 따스하게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그분에게 시험처럼 남아있는 걱정과 근심을 졸업하시라는 인사를 꽃과 함께 보냈다. 요 며칠 마음이 심란했다. 내일은 내 근심을 졸업시킬 노란 프리지어를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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