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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21. 2022

별일 없이 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생기면 하루에도 여러 번 모래바람이 분다. 모래알들은 입안으로 밀고 들어와 말을 하기 어렵게 혀에 감겨 서걱거린다. 가슴 속으로 내려가 축축해진 마음에 들러붙어 숨을 쉴수록 부대끼고 따끔거린다. 눈을 뻑뻑하게 하고 눈앞을 뿌옇게 흐트러뜨린다. 발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발등을 누르고 발목을 감싸며 붙잡는다.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겪어도 힘들고 남이 겪는 것을 지켜보는 일도 어렵다. 


그럴 때는 모래바람이 잠잠해지도록 다른 바람들은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입안에 들어찬 모래알이 까끌까끌하고 눈자위에 달라붙은 모래조각이 따끔거리는데 바람이 더 불면 모래가 더 휘날려 더 심하게 아프다. 바람을 더하지 말고 물을 나누어주면 좋겠다. 눈을 씻고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물 한 바가지 주고 입을 헹굴 수 있게 물 한 모금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부는 모래바람이 가라앉고 얼굴을 닦고 개운한 표정으로 저기 높은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고 별자리를 나침반 삼아 다시 길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일 없었다는 듯이 옷에 붙은 모래알 툭툭 털고 일어나서.   



별을 별이/허수경 


별을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고 칼로 별을 도려낸 흔적을 가진 이도 있고 그 흔적을 개조해서 무덤으로 만든 이도 있고 공중에 별을 걸어놓고 벌집을 만든 이도 있지만 별로 밥을 먹거나 별을 살 속으로 깊이 집어넣고 우는 이도 있고 진저리를 치며 가까운 별을 괴롭히거나 별을 구우려고 불을 피우려고 하는 이도 있지만 별을 사막에서 바라보면 별을 사막의 바람이 자고 난 뒤 바라보면 사실 별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고 별이 우리를 가지고 있지만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2005/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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