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은 추위도 가시기 전에 일찍 폈다가 봄이 오기 전에 뚝뚝 져버린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봄의 시작을 알리면서 핀다. 담장에 노랑이 펄럭이고 약수터 산책길에 말간 분홍이 일렁이고 나면 목련이 부화를 시작한다. 엄마 새의 가슴 털처럼 보송하고 따뜻한 봄볕은 가지마다 알처럼 갸름하고 동글하게 자리를 잡은 목련 꽃봉오리를 품어 마치 새가 날아오르려 날갯짓하는 모습으로 희고운 꽃송이를 피워낸다. 목련이 깃털을 날릴 때면 벚꽃이 구름처럼 와서 비처럼 지고 철쭉이 후끈 달아오른 봄을 보여준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진다. 봄에 핀 꽃이 가을까지 가지는 않는다. 아주 오랜 옛적부터 뿌리가 흙에서 익힌 습성으로 봄꽃은 봄에 피고 여름엔 여름꽃이 핀다. 매년 되풀이되는 풍경이지만 매번 새롭다. 겨울 다음에 봄인 것이 당연한데도 매번 경탄하게 된다. 봄날 일찍 핀 꽃이 봄이 가기도 전에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쉽지만은 않다.
어느 꽃이든 피면 진다. 동백의 붉음도, 뒤를 이은 개나리의 노랑과 진달래의 분홍도 사라진다. 어제의 봄은 흰 새처럼 피어오르던 목련에게 조명을 비추다가 오늘은 벚꽃이 지는 장면에 반사판을 들이대며 꽃잎이 방울방울 흩어져지는 장면을 눈부시게 연출하고 있다. 화려해서일까? 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인데 사라지는 풍경을 우리는 슬퍼하지 않는다. 꽃이 필 때 지는 모습을 걱정하지 않는다.
봄꽃이 지듯, 이 봄에 저무는 사람들 곁에 머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틀 전 새벽 잔기침을 오래 하던 아저씨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농담을 했는데 어제는 기침 소리가 나던 방이 조용하다. 불이 꺼져있다. 새싹 같은 여섯 살, 여덟 살 딸아이들 두고 떠나는 마흔 살 꽃 같은 엄마를 보내는 일은 충격이었다.
지난번 일하던 곳은 천천히 오래 시들어가는 모습을 마주했었다. 그래서 늙음과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었다. 이곳에는 언제 질지 모르는 꽃 같은 존재들이 있다. 꽃은 지고 만다는 것을 알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저버리면 당황스럽다. 사람도 그렇다. 태어나 살아가는 일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인 줄은 알면서도 안타깝다. 마지막을 준비하러 들어온 사람들이지만 그 마지막의 끝이 너무 갑자기 성큼 덮쳐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당혹스럽다.
올해는 벚꽃이 빠르다. 봄에 꽃 피는 순서는 목련이 먼저고 그다음이 벚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는 벚꽃은 피었는데 목련은 아직 봉오리다. 어쩌면 우리 동네 목련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목련이 그늘에 있고 벚나무가 볕 좋은 쪽에 자리를 잡아서 늦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결국 목련꽃도 피고 새처럼 날개를 펼치다가 어느 아침 툭툭 꽃잎을 떨굴 것이다. 그렇게 질 것이다.
그러나 꽃 지던 자리에 있던 바람은 기억할 것이다. 목련이 어떻게 부풀었다가 피었다가 졌는지를. 사람도 그럴 것이다. 지는 사람 곁에 있던 이들은 그들이 사라져도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기억 속에서는 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맘대로
열흘 붉은 꽃 없다 말하지
어, 꽃이다!
꽃 피듯 불쑥 팔을 뻗는다
어디?
꽃 피듯 불쑥 고개를 쳐든다
저기, 저기
꽃 피듯 불쑥 어깨를 들썩인다
아하, 정말
꽃 피듯 불쑥 웃음이 핀다
사람들이 꽃으로 피어난다
지지난해에도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또 내년에도
꽃은 매양 그 자리에서 피어
겨우내 시든 사람들을 다시 피우고 있는데
사람들은 맘대로
열흘 붉은 꽃 없다 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