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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un 17. 2023

마음, 꽃물 들다

꽃물 같은 말의 힘

  

마음에 먹물이 번지고 있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 먹물은 마음을 검게 물들였다. 시야가 흐려지고 발길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하여 암담했다.     


“힘드시죠? 저도 그랬어요.”     


누군가의 위로의 말이 꽃물처럼 내 마음으로 떨어졌다. 어둡던 눈앞이 서서히 밝아졌다. 휘청거리던 다리에 힘이 생겼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마음이 달라졌다. 달라진 마음이 몸을 일으켜 국수를 삶게 하고 국물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게 했다. 며칠 동안 밥 먹기도 귀찮아서 즉석밥을 데워 젓갈 한 가지만 놓고 대충 먹는 척했는데 제대로 차린 밥을 먹었다. 내가 나를 먹였다.      


만약 그릇에 들어있는 물에 먹물이 떨어졌다면 그 물을 다시 맑게 정화하기 위해서는 몇 방울의 꽃물로는 어림도 없다. 원래 있던 물보다 몇 배를 넣어도 검은색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여쁜 색의 꽃물조차 검은색에 먹혀버리고 만다.   

   

하지만 마음은 가능하다. 여러 번에 걸쳐 던져진 뾰족한 말에 걸려 상처 입고 고꾸라져있던 마음이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 상처를 다독이고 일어섰다. 말의 힘이다. 말은 살아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므로,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있다. 비록 짧은 말 한마디라도 들어있는 마음의 크기는 아주 커서 힘을 발휘한다.      


“최 선생, 이거 먹고 떨쳐버려요.”      


다른 한 분은 내게 딸기 라떼를 내미신다. 시원하고 달콤하다. 붉은 딸기가 우유와 섞이면서 번지는 분홍색이 곱다. 내 마음에도 분홍 물이 번진다. 달콤함도 번진다. 마음이 시원해진다. 이렇게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 위로받고 다시 일어선다.     

 

국수를 먹고 기운을 차려 마당을 보니 수국이 가득 피었다. 돌봐준 것도 없는데 알아서 피었다. 꽃이 피면서 연두색에서 하늘색으로 다시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다. 점점 진해지고 있다. 흐려졌던 내 마음의 힘도 점점 진해지고 있다. 꽃물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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