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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ul 02. 2023

오늘 나는 새로운 나다

최근에 처음 만난 분으로부터 여성스럽고 배려가 있는 모범생 스타일이란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기분이랄까. 다들 자기 안의 모나고 구겨진 구석은 스스로가 잘 안다. 나도 그렇다. 단지 살면서 타인을 통해 느끼고 배우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이십 대에는 싫은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지금도 마음의 눈은 잘 마주치지 못한다. 단지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도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아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하여 반갑게 웃어주지는 않지만, 고개를 돌려 피하지는 않는다.   

  

삼십 대에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어설펐다. 받는 것은 부담스러웠고 얼른 갚아야 속이 편했다. 그런데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된 동네 친구를 통해 이런 나를 조금씩 바꾸게 되었다.      


그 친구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졸업하고 몇 개월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되었는데도 만날 때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오곤 했다. 어느 때는 아들을 주라고 과자를 포장해오기도 했고 핸드크림 같은 것을 준비해오기도 했다. 비싸지는 않지만 받으면 기분 좋은 그런 것들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 경제적으로 윤택하니까 선물을 하나보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몇 번 받다 보니 받기만 하는 내가 뻘쭘했다.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문득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만나는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하게 된다. 받는 사람에게 적당할지, 기뻐할지,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고른다. 마음으로 미리 만나는 과정이겠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에 작은 선물을 준비하면서 나를 미리 생각했으리라. 약속 시간에 맞춰 허둥지둥 씻고 옷만 갈아입고 나갔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작은 선물을 통해 큰 가르침을 얻었다.     

 

사십 대에는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방을 하던 때였다. 정말 이상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가 있었다. 자기 아이가 집에 와서 선생님이 자기를 차별했다고 했다는 항의성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 학부모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학생도 자기 아이처럼 섭섭함을 느낄 수 있으니 전화해서 확인해 보고 자기에게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소문이 나서 아이들이 그만둘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학부모가 원하는 데로 다른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때 전화를 받은 학부모가 내게 한 말은 내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선생님, **엄마가 그런 요구를 했다고 해서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마세요. 선생님께서 차별한 게 없으시잖아요. 그런 요구를 하는 **엄마가 무례한 겁니다.”    

  

전화를 끊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엉엉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자. 나를 지키기 위해 거절할 것은 거절하자.     


오십 대에는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 다시 일하게 된 곳이 요양병원이다. 가로 일 미터 이십 센티, 세로 이 미터 정도 크기의 침대가 자기 방의 전부인 노인들을 보면서, 그 침대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 보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 미루지 말고 보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만나서 같이 먹자고.     


오늘은 중학 동창들을 만나러 간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작은 선물로 냉커피 한 잔씩 사줄 거다. 친구들이 옛 단국대 자리를 걷자는데 딱 이십 분만 걸을 거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다. 만약 이십 분 넘으면 거절하는 용기를 발휘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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