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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ul 23. 2023

우는 당신의 손을 잡고


오늘의 애인이 아이처럼 

눈이 빨개지면서 짜디짠 눈물을 흘려요 

나는 애인의 손을 잡고 복숭아 속으로 들어가요



오늘의 애인은 어쩐지 시무룩해요. 섭섭한 일이 있나 봐요. 시무룩할 때는 매운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죠. 내가 날아가서 짬뽕을 사주겠다고 했어요. 싫대요. 쉬고 싶대요. 유혹의 기술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의 애인은 어쩐지 시무룩해요. 속상한 일이 있나 봐요. 속상할 때는 강바람을 쐬는 것도 괜찮죠. 한강공원으로 나오면 라면을 사주겠다고 했어요. 싫대요. 안 넘어가네요. 유혹의 기술을 더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시무룩한 마음에 저녁도 안 먹고 그냥 잘까 봐 걱정이에요. 남들 때문에 마음이 섭섭해져서 괜히 밥도 안 먹고 몸을 상하게 할까 봐 걱정이에요. 몸 따로 마음 따로 아니거든요. 내 몸 있어야 내 마음도 있는 거거든요. 


숲길을 걷다 보면 여러 종류의 나무를 만나게 되죠. 초록의 잎을 무성하게 달고서 그늘을 만들어 땡볕도 막아주고 세찬 빗줄기도 가늘고 부드럽게 해주는 나무를 만날 때가 있죠. 그런 나무를 만났을 때는 눈을 감고 팔을 좌우로 뻗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기쁘게 즐기면 돼요. 좋은 운을 즐기는 거죠.


잘생긴 척 어깨를 들썩이며 시선을 끌지만 가까이 가보면 송충이 같은 벌레가 우글거리는 나무도 만날 수 있어요. 그런 나무를 만나면 재빨리 피하면 된다고 나의 애인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나무에게 속았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눈앞에서 대롱거리는 벌레는 신발을 벗어서 후려쳐버리고 후딱 달리라고요. 잘 피했다고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며 자기 머리통도 쓰다듬어 주라고 하고 싶어요.


나의 애인은 팔뚝은 튼실해 보이던데 허벅지 근육은 ‘읍써’ 보여요. 숲길이건 벌판이건 지치지 않고 잘 걸으려면 다리에 힘이 있어야겠죠. 뭘 좀 ‘멕이고’ 싶은데 짬뽕도 라면도 싫대요. 아, 좋은 메뉴가 생각났어요. 


다리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족발이 좋대요. 내가 지금 막 그렇게 정했어요. 시무룩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섭섭함을 매우 치고 속상함도 매우 쳐서 날려버리는 방법이 필요해요. 매운 족발을 민족의 이름으로 배달시켜 앞니로 쫙쫙 뜯어요. 어금니로 질겅질겅 씹어요. 혀가 얼얼하다는 핑계로 욕을 몇 마디 뱉어요. 눈물이 핑 도는 건 너무 매운 탓이죠. 콧물이 들썩거리면 시무룩한 기분도 같이 핑 풀어서 버려요.


아무래도 오늘의 나의 애인에게 ‘매운 족빨’을 선물해야겠어요. 뜯고 맛보고 씹고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무섭지만.



나의 애인이 아이처럼 눈이 빨개지면서 짜디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날에는 애인의 눈을 가리고 복숭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달콤한 향기에 울던 눈이 반짝 웃을 수 있게요



덧/

어제의 애인은 나를 언니라고 불렀는데 오늘의 애인은 내가 언니라고 불러요. 애인의 다른 말은 언니인가 봐요. 갸우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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