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치자꽃이 피었다

by 최희정


지난해 같으면 이미 남쪽에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올라왔을 때다. 꽃망울 터지듯 여기서 툭 저기서 툭툭, 자랑하는 사진과 글이 난만할 때다. 우리 동네 매화꽃이 이쁘다, 아니다 우리 집 뒷산 가는 길 절에 있는 홍매가 보기 좋다 꽃을 놓고 겨루는 구경도 할 때다. 하지만 올해는 추위가 오래가면서 꽃소식이 늦다. 심지어 내가 사는 곳은 오늘 아주 맵고 춥다. 햇빛만 찬란하다.


추위를 무서워하는 나는 밖으로는 발가락 하나 내놓지 않고 집 안에 들어앉아 있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볕이 아무리 따셔도, 멀리 보이는 하늘이 아무리 맑아도 속지 않을 거다. 절대로 집 밖으로 안 나갈 거다. 이런 마음으로 등을 따뜻한 거실 바닥에 붙이고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어디서 솔솔 단내가 풍긴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 쪽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본다.


치자꽃이 피었다. 겨울 초입에 마당에서 거실로 들여놓은 치자 화분에 꽃봉오리가 달렸었다. 치자가 꽃을 보여주는 계절은 오뉴월인데 일월도 되기 전에 봉오리가 생겨 깜짝 놀랐다. 식물을 키우는 일이 서툰지라 걱정이었다. 돌본다고 애를 썼다가 오히려 꽃이 피지 못할까 봐 근심이었다. 열 개가 넘개 달린 꽃봉오리를 보면서 조마조마했다. 사흘에 한 번 물을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늘 꽃이 피었다. 누군가 나의 걱정에 꽃은 알아서 잘 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보름 넘게 연두색 봉오리가 동동 떠 있는 화분을 보면서 바깥 기온이 너무 차서 시들어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내 눈길에 겁먹을까 봐 똑바로도 못 보고 곁눈으로만 슬몃 봤었다. 다행히 어제부터 연두색 꽃봉오리가 살짝 흰색으로 변하더니 오늘 활짝 피었다. 화분이 놓인 자리가 동향이라 아침 일찍부터 햇빛과 햇볕과 햇살이 가득했다. 그 덕을 본 듯하다.


뱃살이 넉넉한 요리사를 닮은 햇살이 아침 여덟 시에 출근했다. 잠깐 실례합니다. 인사를 하더니 불쑥 화분 곁에 서서 봉오리 하나를 들고 요리 쓰다듬고 저리 매만진다. 꽃봉오리가 뽀얘진다, 모양이 매끈하게 다듬어지자 본격 발효를 시작한다. 차 마시다 돌아보니 봉오리 끝이 살짝 부풀어 있다. 숙제하다 돌아보니 갸름하던 모양이 봉긋해졌다. 아이고 노곤하다. 잠깐 쉬는 사이 햇살은 발효 끝낸 꽃봉오리를 따끈따끈하고 빵실 빵실하게 구워서 내놓는다. 잘 치대진 꽃잎이 결이 곱다. 잘 발효시킨 꽃송이가 도톰하다. 잘 구워져 향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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