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라는 가수의 "양화대교"라는 노래를 들으면 나는 "성산대교"가 떠오른다. 이 다리의 남단은 강서구로 이어져 있다. 강서구는 이름 그대로 서울의 서쪽 끝으로 평범한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특히 강서구의 가장 서쪽 끝인 공항동이나 방화동은 서울 중심에서 살다 밀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 안에서 안정되게 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꽤 모여 살았다. 우리 집도 그랬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정릉에서 성남을 거쳐 결국 주저앉게 된 곳이 공항동이었다. 우리가 처음 그 동네에 이사를 했을 때는 집에서 골목 몇 개를 돌아 나가면 갑자기 논이 나타났다. 그만큼 서울이면서 시골 같은 동네였다.
지금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비싼 아파트며 빌딩들이 가득 들어선 마곡지구는 아주 오랫동안 집 한 채 없는 논이었다. 밤이면 불빛 하나 없이 깜깜했다.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발산동 정류장을 출발한 버스는 넓게 펼쳐진 마곡 벌판을 한동안 달려서 공항동에 도착했다. 이때쯤이면 버스 안에는 손님도 몇 명 남지 않았다.
공항동에서 방화동으로 가는 버스들은 모두 공항을 들려야 했다. 늦은 밤 공항입구 정류장에서 버스기사님들은 운전대 위에 놓인 거울로 손님들을 바라보면서 '공항 들어가실 분 있으세요?'라고 외쳤다. 그러면 열에 열 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끊긴 시간에 공항에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무도 없으시죠?' 기사님은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공항 입구에서 오른쪽 길로 돌아 방화동으로 곧장 차를 몰았다. 공항시장 지나 에덴 약국 앞에서 한 두 명 내리고 방화 주유소에서 또 한 명쯤 내리고 우리 집이 있는 방신시장 앞 정류장에 차가 도착할 때쯤이면 차 안에는 거의 나 혼자였다.
강서구 끝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십 대를 보낸 내가 진짜 서울을 갈 때는 버스를 타고 성산대교를 건넜다. 성산대교를 건넌 좌석버스 68번은 마포를 지나 신촌 초입 연대 앞을 지나 을지로 입구에 있던 의리 번쩍한 롯데백화점 본점을 회차하여 다시 방화동 종점으로 되돌아왔다. 좌석 63번 버스는 비슷한 코스로 서울로 들어가 시청 옆 덕수궁을 회차하여 다시 성산대교를 건너 인공폭포를 지나고 등촌동을 지나고 발산동 마곡동을 지나 공항을 돌아 개화산 밑에 있는 방화동 차고지로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서울 한복판 필동에 있는 병원에 취직을 했다. 근무를 마치면 지하철을 타고 시청 앞까지 와서 덕수궁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강서구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성산대교를 건널 때면 창 밖에 너른 강물이 윤슬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가끔은 진주홍빛 노을이 강물을 꽉 채우고 있기도 했다.
버스 안에는 종일 일에 시달린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버스 손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로 버스가 달리다가 서다를 반복할 때마다 흔들거렸다. 서울로 돈을 벌러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서 버스가 종점에 다다를 때면 사람도 버스도 같이 피곤에 지쳐 덜컹거렸다. 사람들 얼굴도 버스 안 불빛도 누렇게 수척해져 있었다.
버스가 다리를 건너 등촌동에 서기 시작하면 타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성산대교를 지날 때면 왠지 서울에서의 고된 밥벌이라는 짐을 벗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을이 가라앉고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면 다리 위 가로등에 반짝 불이 들어오는 순간이 온다. 마치 마법처럼 일순간에 줄줄이 늘어선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그 풍경은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의 소박한 꿈들이 불빛이 되어, 그들이 타고 있던 버스를 호위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