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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r 03. 2022

자두나무가 있던 마당




정확한 계절은 기억나지 않는다. 봄이었는지 여름이었는지 아니면 가을이었는지 그건 모르겠다. 저녁이었다는 것은 기억난다. 4층 여덟 가구가 사는 빌라 건물의 입구에 여러 가지 살림살이가 벌려져 있었다. 이사라고 하기에는 짐이 단출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가 대여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 둘과 짐을 나르고 있었다. 나를 본 여자는 해외에서 막 들어왔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우리말이 서툴렀다. 여자는 아이들에게 말할 때는 영어로 말을 했다.


그들은 우리 집 아래층에 이사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계단에서 마주치기도 했고 아이들이 노는 마당에서 같이 앉아 있기도 했다. 그 집 아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고 내 아이가 그 집에 가기도 했다. 그때 나는 열 살짜리 첫째 아이와 세 살짜리 둘째 아이의 엄마였다. ‘엄마’라는 대명사로 연결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던 때였다. 그들과 많은 말을 했었다. 아래층 아이들의 엄마인 그녀와도 그렇게 지냈다.


“누군지 못 알아봤네. 대학생인 줄 알았어.” 집 앞에서 마주친 아래층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웃었다. 나는 화장을 조금 하고 옷장 속에 오래 두었던 바바리코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결혼 전 직장 생활할 때 내가 번 돈으로 산 옷이었다. 스물아홉 살에 첫 아이를 낳고 나서는 입을 일이 없었다. 서른 중반에 둘째를 낳고도 옷장 속에 오래 있었다. 그 옷을 꺼내 입고 몇 년 만에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러 나가던 길이었다. 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밤마다 전화기를 꺼 놓고 술을 마시던 남편에게 지쳐 무작정 집을 나서던 길이었다.


“그 집 애들 아빠는 참 순해 보여. 애기 엄마가 시키는 일은 다 잘해줄 거 같아.” 마당에서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웃었다. 마당에는 세 살과 다섯 살과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 셋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때는 이번 달에는 작은 언니에게 돈을 빌려볼까 궁리를 하던 때였다. 남편이 밤마다 지역의 유명한 LP바 사장과 형님 아우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을 모르던 때였다. 늦은 새벽까지 생활비를 계산하면서 남편을 기다리던 때였다. 작은 방 책꽂이에 꽂혀있던, 시인을 꿈꾸던 사내의 오래된 시집들의 등이 누렇게 황달이 들던 때였다. 그때는 아래층 아저씨가 시인인 것을 몰랐다.


그녀는 2년을 살고 떠났다. 지방 어디에서 옻된장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가끔 그녀가 생각났다. 이사하던 날 씩씩하게 짐을 나르던 모습이라던가 개구쟁이 두 아들과 온몸으로 놀아주던 모습도 생각났다. 남편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러 먼 곳에 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아련해지던 표정과 지방 촬영을 갔던 남편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고 들떠 있던 얼굴도 떠올랐다. 우연히 본 아래층 아저씨의 기골이 장대한 모습도 생각난다. 금방 다시 떠날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녀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아세요?’


웃음 뒤에 하지 못한 말들이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시절을 살던 마당 한쪽에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봄이면 하얀 꽃을 피우고 초여름이 되면 푸른 자두가 열렸다. 나무는 깔깔거리며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그녀와 나의 이야기를 듣다가 말하지 못한 내 이야기를 감춰 주었다. 그 나무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작고 동그란 마당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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