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어두컴컴하던 병실의 불이 켜진다. 환자들은 아직 잠들어 있다. 이 방은 중증 환자들이 있는 병실이다. 대부분 말을 할 수 없고 겨우 눈만 마주칠 뿐이다. 스스로 밥을 먹지도 대소변을 처리할 수도 없다.
오랫동안 병상에 있어 계절이 가고 오는 것을 모른다. 밤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도, 꽃비가 내리는 봄도 사각의 천장에 갇힌 이들에게는 다시 보고 느낄 수 없는 풍경이다.
어제 새벽이었다. 다른 날처럼 병실 불을 켜고 전체적으로 병실을 둘러본 후 환자 한 명 한 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몸에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주사는 잘 들어가고 있는지 소변은 잘 나오고 있는지 등등을 살피고 가래를 빼주는 일을 시작했다. 사시사철 누워서 지내는 사람들이라 폐 운동이 좋지 않아서 인위적으로 분비물을 제거하는 일을 주기적으로 해주어야 한다.
직업상 하는 일이지만 이 일은 참 힘들다. 환자들의 분비물 흡인을 마치고 환기를 시키려 잠시 창문을 열려고 하는데 한 환자의 머리맡 창가에 놓인 무언가가 보였다.
갈색의 작은 자양강장제 병에 노란 민들레 두 송이가 꽂혀 있었다.
"어머 민들레꽃이네. 보호자 분이 낮에 면회 오셨었나 봐요. 오면서 꺾어 오셨나 보다. 환자분 이거 보이세요? 민들레예요. 지금 밖은 봄이에요."
나는 병을 들어 꽃을 가리키며 환자에게 보여주었다. 환자는 잠시 꽃을 응시하는 것 같더니 다시 시선이 흐려졌다.
"아이고, 그런 거 아녀요. 제가 낮에 요 앞에 잠깐 나갔다가 이뻐서 들고 왔어요. 다 시들었네. 버려야겠다."
병실을 담당하고 있던 간병사가 얼른 다가오더니 병을 들어 꽃을 치워버린다. 당황하는 표정이다. 그냥 두시라는 나의 만류에도 계면쩍어하며 얼른 빈 병을 감춰버린다.
흔히 요양병원의 간병사는 조선족으로 불리는 연변에서 온 동포들이 많다. 대부분 쉰 중반인 나보다 나이가 많다. 일제강점기에 먹고살기 힘들어 조선 땅을 떠나야 했던 조선 백성의 후손들이다. 조상들이 떠나야 했던 땅에 먹고살기 위한 돈을 벌러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다. 돌아와서도 한국 사람인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고 피하는 일 중의 하나인 일을 하고 있다. 아마도 연변에서의 삶이 풍족했다면 다시 돌아와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를 돌보는 일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힘들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소변을 받아내고 씻기고 먹이는 일을 한다. 환자들 곁에서 같이 밥을 먹고 납작하고 폭이 좁은 간이 침상에서 잠을 잔다.
보호자들은 일대일 간병에 드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니 간병사 한 사람이 여러 명의 환자를 돌본다. 휴식 시간이나 수면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쉬는 날도 마찬가지다. 개인 짐을 보관할 공간도 없고 휴식공간도 없다. 형편이 이러니 대부분 허리가 좋지 않아서 복대를 차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민들레꽃을 꺾어다가 꽂아둔 간병사는 별일 아닌 듯이 꽃을 치워버렸지만, 하필이면 민들레라서 마음이 쓰였다. 민들레라는 꽃, 벌판에 낮게 낮게 납작하게 엎드려 잎을 키워 자리를 잡고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워서 씨앗들을 멀리 날려 보내는 꽃, 조상 꽃이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우고 자리를 잡는 일을 다시 해야 하는 꽃, 삶의 고난을 피해 고향을 떠나 연변으로 가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닮은 꽃. 그 먼 땅에서 다시 풀꽃의 씨앗처럼 반도 땅으로 혈혈단신으로 돌아와야 했던 사람들을 닮은 꽃. 민들레는 그런 꽃이라서 마음이 쓰였다.
그녀는 빈 병을 버리지 않고 다시 서랍에 넣어두었다. 어쩌면 며칠 후 다시 병에 꽂힌 꽃 몇 송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그냥 모른 척해야겠다. 그분이 한두 송이 꽃이나마 마음 편히 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