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낯선 집의 문을 열자, 현실감이 훅 끼쳐 왔다. 정말 믿어도 될까? 나에게 집 열쇠를 맡긴 고양이 주인은, 30대 후반의 인도인 남자였다. 그는 자신도 한때 힘든 시절이 있었다며, 도움은 주고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그를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의 친구를 통해 집 열쇠를 전해 받은 게 다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아갈 곳 자체가 없었다. 이사라고 해봐야, 대형 쓰레기봉투에 짐을 잔뜩 넣고 트램을 몇 번 갈아탄 일이 전부였다.
돈이란 무엇일까? 예술을 하겠다고 대학에 왔던 때부터, 어쩌면 그전부터 난 언제나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네덜란드에 온 뒤, 부자들을 수도 없이 마주하면서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게 돈이란 언제나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탁 트인 창밖으로 끝도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닥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전에 살던 집에선 신발을 신지 않으면 발이 시려 견딜 수가 없었다. 멀리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그게 고양이를 돌보는 조건으로 들어간 그 낯선 대저택에서 내가 받은 첫 번째 인상이었다.
내가 돌봐야 할 고양이는 총 두 마리였다. 고양이 주인 V는 고양이들의 이름도 알려줬지만, 너무 복잡한 인도 이름이라 그때도 뭐라고 읽는지 잘 몰랐다.
두 마리는 형제였다. 형 고양이는 얼굴이 좁고 낯을 많이 가렸고, 동생은 얼굴이 크고 둥글었다. 동생 고양이는 붙임성이 좋아서 첫날부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지만, 질투심도 많았다. 형 고양이와 내가 가까이 있기라도 하면, 언제나 털을 바짝 세우고 달려들었다.
나는 고양이 물그릇을 채워주고, 바닥에 흩어진 사료를 다시 모았다. 고양이 사진을 찍어 V에게 보내자, 그는 걱정 말고 편하게 있으라고 했다.
그 집엔 방이 4개 정도 딸려 있었다. 거실은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등 뒤에서 햇살이 내려왔다. 지하방에서 쪼그려 자거나 스튜디오에서만 살던 내게, 그렇게 커다란 집에서의 자유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됐다. 개발자로 일하는 V의 물건들이 집안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대형 피규어들이나 각종 기계들, 먹다 남은 간식 껍질 껍질까지. 그는 나의 무엇을 믿고 집 전체를 내어준 것일까?
나중에 찾아보니, 그 집의 월세는 천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네덜란드에선 보통 월세의 두 배 이상은 되는 소득이 있어야 계약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의 월급은 도대체 얼마일까. 내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 단지 '공간의 사용료'로 빠져나가는 이 집에서, 난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며칠은 긴장을 놓지 못했다. 혹시 이 집 어딘가에 카메라라도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침이면 침대에서 숨을 죽이는 버릇이 생겼다. V는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갑자기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하루아침에 내 앞으로 떨어진 편안함을, 나는 빠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식비 걱정도 없었다. V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밀키트를 시켜 두었고, 그것도 그냥 먹으라고 했다. 상자 안에는 일주일치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하나씩 꺼내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V가 사 둔 과자며 냉동식품, 냉장고에 남겨진 각종 소스까지 전부 꺼내 먹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요리할 수 있는 자유를, 남의 집에서 빌려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먹고 소파에 누워 있으면 바다가 보였다. 고양이들은 곧잘 품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아직도 꿈속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창밖으로 수많은 배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어왔다 사라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은 하나같이 내 또래처럼 보였다. 옆집에는 젊은 커플이 살았다. 난 가끔 그들의 택배를 대신 받아 줬다. 택배는 대체로 비슷했는데, 베르사체나 샤넬 같은 브랜드에서 보내온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꽃다발이었다.
이 집에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다. 그는 바로 옆 동에 사는, 한국 나이로 스무 살쯤 된 대학생이었다. 그도 그 집에 혼자 살고 있었는데, 변호사로 일하는 부모님이 통학을 위해 사줬다고 했다. 그는 취미로 디제잉을 한다며, 자신이 만든 곡을 들려주곤 했다. 기분이 안 좋으면 내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갈까? 나는 그런 말들이 참 싫었다. 그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몰라도 좋았을 것들을 새삼 깨닫게 되곤 했기 때문이다. 이 중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V가 돌아왔다. 늘어지게 잠을 잔 주말 오후였다. 평소엔 열릴 일이 없는 현관문이 열렸다. 고양이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난 V의 침대에서 그가 사놓은 이불을 덮고, 그가 사둔 음식들을 먹으며 그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 V는 사람 좋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고양이들을 돌봐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가 짐을 풀고 씻는 동안 서둘러 침대를 정리했다. 당장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내 짐들은 이미 그의 집안 곳곳에 있었지만,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리는 데는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양이는 내가 짐을 싸느라 관심을 보이지 않자, 휙 돌아섰다. 그 모습이 서운할 틈도 없었다.
내가 종교에 대해 순수하게 감탄한 적이 딱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팬데믹 시절, 한인교회에서 내게 구호식량을 가져다줬을 때이고, 두 번째는 힌두교인 V가 선행은 돌아오는 것이라며 나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 줬을 때이다. 그는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집을 구할 때까지 같이 있어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운동을 위해 꾸며둔 방 한 켠에 담요 하나를 깔고 살게 되었다. 이제는 누우면 바다가 아니라 러닝머신과 덤벨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V는 고양이들이 무척 건강해 보인다며 기뻐했다. 그가 돌아온 뒤, 고양이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들과 잘 지내려 애썼다. 집을 구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고양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그 집에 ‘정당하게’ 머물 수 있는 권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가끔 손님을 집에 데려오곤 했다. 나보다도 어린, 스무 살 언저리의 여자애들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V와 어떤 관계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올 때마다 나는 테크노 음악을 크게 틀었다. 삼십 분쯤 지나면, 누군가는 서둘러 집을 나섰고, 누군가는 어쩐지 개운한 얼굴로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웠다. 나는 담배 냄새가 고양이에게 안 좋다는 말이 나올까 봐,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용히 그 뒤에 서 있었다. 나도 종종 담배를 피우곤 했던 곳이었다.
그의 집에 ‘손님들’이 올 때마다, 나는 차라리 가정부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게 나와 그들이 다르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늘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었다. V에게도 그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옷차림은 제각각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평범한 학생도 있었고,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한 인플루언서도 있었다.
V는 내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최선을 다해 고양이를 돌봤다. V는 내게 개발을 배워보라고 했고, 강의를 끊어주기도 했다. 내가 V에게 넌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할 때마다, 그는 묘한 얼굴로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러시아에서 여자친구가 온다며 이제 그만 나가줄 수 없겠냐는 말을 했을 때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의 선의는 이미 선의로 볼 수 있는 선을 넘어 있었다. 그녀 역시 나처럼, 그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나와 달리, 그의 ‘여자친구’가 되기로 했을 뿐이었다. 네덜란드에서 그와 함께할 그녀의 삶을, 나는 조용히 축복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