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환자 입주 간병인 1화

수상한 면접과 지하방

by 우나

남자친구가 감옥에 간 이후, 나는 아무것도 없이 암스테르담 한복판에 남겨졌다. 그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 눈에 난 그저 어리숙한 아시안 여자애일 뿐이었다. 나 역시 그들의 집에서 몇 주 넘게 얹혀 살 정도로 뻔뻔하진 못했다.


남자친구는 과거 마약 관련 혐의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감옥에 갔다고 했다. 나를 실망시킬까봐 무서워서, 내가 네덜란드에 오기 직전까지도 털어놓을지 망설였다고. 그다운 결말이었다. 어쩐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16명이 함께 자는 호스텔 방. 시내에서 가장 싼 곳을 구했지만,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도 몇 만 원씩 빠져나갔다. 장기 투숙이 되지 않는 곳이라 매일 침대를 옮겨야 했다. 들뜬 얼굴의 관광객들이 날마다 바뀌었다. 전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간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뒤를 돌아봐도 아무것도 없는 어둠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길을 잃더라도 일단 여기서 앞으로 가고 싶었다.


돈도 없고, 제대로 된 비자도 없는 스물셋. 내가 가장 먼저 찾아본 건 ‘보모 구인 사이트’였다. 어디선가 유럽에선 입주 보모나 가정부 일을 흔히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숙식이 해결되고 돈까지 받을 수 있다면, 이보다 완벽한 생존 방법이 또 있을까?


가장 유명한 사이트를 찾아 들어갔다. 내 사진을 올리고, 자기소개 글을 썼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화장이 더 진했다. 길을 걷다 보면 키메라 같다는 말을 듣곤 했고, 학교 에브리타임에도 종종 내 얘기가 올라왔다. 그런 사진을 프로필에 걸고 “아이들을 돌보겠다”라고 썼으니, 연락이 올 리가 없었다.


그런데 딱 하나, 연락이 왔다. 자신을 부동산 회사의 사장이라고 소개한, 60대 네덜란드 남자였다.


그의 첫 메시지는 꽤나 공손했다. 자신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젊었을 적 사진까지 함께 보냈다. 그는 폴로, 그러니까 부자들이 즐긴다는 그 말 위에서 공을 치는 스포츠를 하다가 말에서 떨어졌고, 그 사고로 전신이 마비됐다고 했다. 그의 조건은 단순했다.


숙식 제공, 월급은 일반 보모의 세 배. 단, 24시간 내내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것.


수상한 조건인가?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때의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좋은 조건이 있다니! 싶었다. 나는 당장 면접을 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영상통화 면접은 간단했다. 내가 진짜 프로필 사진처럼 생겼는지, 영어는 할 줄 아는지 정도를 확인한 셈이다. 그는 동양 여자는 착하고 예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고, 곧바로 언제부터 일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들뜬 마음에 없는 돈을 털어 그에게 선물할 유카타까지 샀다. 당시 내겐 정상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었다.


그의 집은 은퇴한 부자 노인들이 모여 사는 거리 한복판에 있었다. 푸른 어둠이 어슷하게 깔린 그 저녁,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 짧은 몇 분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윽고 5분쯤 지나, 문이 열렸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북유럽 여자애였다. 문을 열자마자 집 안의 온기가 훅 끼쳐왔다. 그녀는 이미 1년 넘게 그의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었고, 내게 앞으로 쓸 방을 안내해 주었다.


그 집은 1층과 지하에 걸쳐 방이 열 개는 족히 있었고, 걸을 때마다 마루바닥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노랗고 어두운 조명 아래, 온갖 장식품과 커다란 그림들이 벽과 천장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사냥용 총, 박제한 동물 머리, 폴로 트로피까지. 집 안은 너무 더워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녀 말로는 전기세만 한 달에 약 4천 유로, 한국 돈으로 650만 원 가까이 나온다고 했다.


내가 쓸 방은 지하에 있었다. 그의 침실 바로 옆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가끔 집에 들어오는 그의 아들이 주로 쓰고 있다고 했다. 지하로 내려가자 발이 시려왔다. 그 지하방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창문조차 없었다. 냉기를 막기 위해 나무로 만든 벽이 덧대어져 있었고, 유독 천장이 낮았다.


그 지하방에서 나는 3개월을 보내게 된다.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그야말로 미친 날들의 시작이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스물셋, 남자친구가 감옥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