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노인 장 봐주기

백만장자 노인의 장바구니엔 ○○이 있었다

by 우나

나는 우버를 타고 R의 집으로 이사했다. 사진작가인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작업 중이었고, 약 일주일 후 네덜란드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는 차고 안 매트 밑에 열쇠가 있다며, 작전 지시하듯 집에 들어가는 법을 알려줬다. 우리 둘은 그때까지 통화조차 해본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 그에게 연락한 나도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 집을 선뜻 내준 그도 지금 생각하면 꽤 신기한 사람이다.


전신마비 환자이자 나의 전 고용주였던 P는, 내 이사를 반가워하면서도 떨떠름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내가 널 쫓아내는 게 되지 않느냐며 미안해하더니,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예전에 사업차 알던 사람에게 요리를 아주 잘하는 간병인이 들어왔다고 말하자 그가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사람은 나처럼 전신마비도 아니야.
넌 그냥 요리만 해주면 돼.


P는 그게 엄청난 혜택인 것처럼 말하며 내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나는 R의 집에 짐을 풀기도 전에 면접부터 보러 가게 됐다.


그는 60대 중후반쯤 된 노인이었고, 은퇴한 부유층이 모여 사는 동네의 2층짜리 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아마 내가 ‘암스테르담의 진짜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처음 본 순간이 그때였을 것이다. 그의 집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땅 넓은 나라라면 몰라도 암스테르담처럼 좁고 값비싼 곳에, 게다가 흐린 날이 대부분인 여기서 집에 수영장이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집 내부는 윤기 나는 검은색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고, 온기에 휩싸여 늘 뿌연 공기가 맴돌던 P의 집과는 달리 어딘가 향긋한 냄새까지 났다. P도 몸을 다치지 않았다면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와의 면접은 간단했는데, 이미 내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장을 봐주고 요리만 하면 된다고 했다. 자신은 바쁘기도 하고, 혼자 살아서 장을 보거나 냉장고 정리를 할 여유가 없다. 집안 청소는 하루에 한 번 가정부가 와서 도와주니,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엌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의 냉장고 옆에는 음식 창고가 있었는데, 웬만한 스튜디오 수준의 크기였다. 안경 가게에 있을 법한 회전식 선반과 찬장들, 천장 여기저기엔 커다란 훈제육이 걸려 있었다. 당장 전쟁이 나서 몇 년을 갇혀 지낸다 해도 끄떡없을 만큼의 음식이 쌓여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굳이 돈까지 써가며 장을 봐주는 사람을 고용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무척 마른 편이었고, 심드렁한 말투를 보니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침과 저녁을 모두 따뜻하게 먹고 싶다며 자신의 집에 입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집은 P의 집보다도 넓었고, 사실 또다시 숙식이 해결된다면 돈을 더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난 몸보다는 마음이 편한 곳에 있고 싶었다. 비록 R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내 또래와 함께 있는 편이 더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해 그 제안은 거절했다.




그는 내게 카드와 집 열쇠, 그리고 파일 하나를 건넸다. 파일에는 날짜와 항목, 수량을 적을 수 있는 표가 인쇄된 종이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매일 장을 본 뒤, 항목과 가격, 수량을 기록해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흔히 네덜란드에서 장을 볼 때 가는 알버트 하인 대신, 집 근처의 다른 식료품점을 이용해 달라고 했다. 당시 알버트 하인도 비싸서 엄두를 못 냈던 내게, 소금 한 통에 20유로가 넘는 가게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과일은 배달 식료품점이 더 신선하니 꼭 거기서 주문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대체 나의 뭘 믿고 카드며 집 열쇠까지 넘겨주는 건지 의문이었다. 내가 그 카드로 다른 물건을 사거나, 마음만 먹으면 갖고 도망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실제로 P가 고용한 내 '후임'은 18살 스페인 여자애였는데, 그의 최신 아이폰과 카드를 들고 사라졌다. P는 분노에 휩싸여 소리를 지르다가 기절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건 이 사람에겐 아무 일도 아닌 셈이다. 애초에 내가 그에게 경제적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위협이 될 수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비자가 나오기 전까지 그의 집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곧이어 자동차 열쇠까지 줬지만, 내가 면허가 없다고 하자 아쉬워했다. 매일 100킬로가 넘는 휠체어를 끌고 다녔던 내게 고작 장바구니 몇 개 들고 다니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은 단순했다. 난 보통 오후 두 시쯤 장을 보고, 그가 준 파일에 목록을 적었다. 그는 음식을 정리하는 순서부터, 창고에 들어갈 것과 냉장고에 들어갈 것의 구분까지 세세하게 알려줬고, 나는 그에 맞춰 장본 것들을 정리했다. 그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건 거의 먹지 않았고, 주로 야채나 과일, 치즈를 먹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일부러 과자나 빵 종류를 사서 넣어두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그가 잊었겠다 싶을 때쯤 몰래 꺼내 먹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는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말했던 식료품점은 생수나 과자 같은 것도 일반 가게와는 달랐다. 감자칩만 해도 마로 만든 칩, 수제로 포장했다는 트러플 감자칩 같은 것들을 팔았다. 초콜릿도 전부 처음 보는 브랜드뿐이었다. 늘 마트의 가장 아래 칸에 있는 가장 저렴한 제품만 계산기를 두드리며 사던 내게, 가격표를 보지 않고 골라도 된다는 건 테라피처럼 느껴졌다. 보기에도 값비싼 옷을 입은 채 장을 보는 사람들. 들어본 적도 없는 마칩 같은 걸 아무렇지 않게 고르는 아이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잠깐이지만 그렇게 믿었다.


음식을 정리한 뒤엔 그의 퇴근 시간인 다섯 시에 맞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는 아침엔 사과 한 개만 깎아 먹었고, 저녁도 간단히 먹는 편이었다. 내가 양념치킨이나 미트볼 같은 걸 만들었을 때, 그는 고맙긴 한데 이런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며 되도록이면 최대한 가볍게 해달라고 했다. 그 뒤로 내가 만든 음식은 대개 고기를 약간 넣은 야채볶음이나, 스테이크 정도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그는 절반 정도만 먹고 남기곤 했다.


요리를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지, 자주 의문이 들었다. 이 무렵 나는 거의 뇌가 마비된 상태였다. 비자 신청 과정은 지옥 같았고, 전 남자친구가 갇혀 있을 감옥 어딘가를 떠올리며 시간을 때웠다. 실제로 그를 그리워한 건 아니었다. 그 감정에라도 빠져 있어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슬픔이나 그리움도 어떤 순간에는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다.




그는 유통기한에 유난히 예민했다.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 남은 음식은 무조건 버리라고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포장도 뜯지 않은 고기나 야채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릴 때면 속이 쓰렸다. 그의 집에 들러 일을 돕는 가정부가 있었지만, 시간이 엇갈려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들이 슬그머니 사라져 있는 걸 보고, 그녀가 남는 음식을 가져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도 별 죄책감 없이 그의 집에서 버려질 음식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고급 식료품점에서 산 양고기나 열대 과일 같은 것을 가져갈 때면, 마찬가지로 돈 없는 사진작가이자 내게 공짜로 집을 내준 R은 무척 기뻐하면서, 그를 우리의 천사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가 버린 음식들에 온갖 양념을 때려 넣어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R과 나는 약 3개월 동안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잤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는 자기 전마다 누워서 담배를 피우며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R은 발리에서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몇 년 전 선생님을 하는 여자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나의 두 번째 고용주. 사실 그와는 얼굴을 마주친 적도 몇 번 없다. 내 일은 그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까지만이었으니까. 다음 날 장을 보러 가보면, 가정부가 이미 정리해 놓은 깔끔한 집이 있었다. 그가 아침을 먹고 간 접시 하나만이 이 집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그의 집에서 내가 본 공간은 부엌과 음식 창고뿐이었다. 물론 집 안에는 나 혼자였기에 어딜 가든 상관은 없었지만, 이제 내 고용주는 자기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나에겐 큰 제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집에서 일했을 때는 이미 겨울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수영장 지붕이 열린 모습은 본 적 없다. 그의 생활에 대해 내가 본 전부는 그 커다란 대리석 식탁 위에 놓인 빈 접시 하나였다. 그는 누군가 초대해 파티를 하거나 술을 마신 적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 수영장에서 선탠을 하거나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비자가 빨리 나와 일을 그만두게 된 날, 그는 알겠다는 뜻의 이모지 하나만을 보내왔다. 나 역시 아쉬운 감정이라곤, 이제 더는 그의 집에서 버려지는 음식들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24시간 붙어 지내며 모든 것을 함께했던 P와, 얼굴도 몇 번 못 본 그.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용히 그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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