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품 사이트 뉴스레터 쓰기

by 우나

한국 대학 문창과 휴학, 임시 비자, 스물셋. 이 조건으로 네덜란드에서 취업하는 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없다'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인회사에도 찾아갔으나 영주권이 있는 사람만 고용한다고 했다. 영주권이 없는 사람을 취업시키려면 이민청에 몇 천 유로를 내고 등록해야 한다고. 차라리 그 돈을 내가 낼 테니 취업시켜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더럽고 치사했다. 그건 내가 외국인으로 유럽에 살아가며 처음으로 느낀 불만이었고, 가장 오래 남는 불운이었다.


전신마비 환자였던 전 고용주 P는 끊임없이 연락을 해왔다. 내 후임으로 왔던 18살 여자애가 그의 돈을 들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도 꽤 매력적인 액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그의 휠체어를 끌며,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이고 걷는 게 지겨웠다. 게다가 임시긴 해도 비자가 나왔다. 이왕이면 직장에 다녀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아르바이트 몇 번 해본 것을 제외하곤 풀타임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게 같이 간병인 일을 하던 S가 데이트 사이트 하나를 소개해줬다. 전 세계 남자들과 실시간으로 채팅을 하며 가능한 한 오래 대화를 이어가는 아르바이트였다. 그녀는 이렇게 쉬운 일이 어딨냐며 나를 잡아끌었다. 난 비닐장갑 하나만 끼고 관장도 하고, 소변도 받아냈다. 이보다 더러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감정을 섞는 일은 꺼려졌다. 마침 전 남자친구를 잊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홍색 하트가 가득한 그 구인 사이트엔 뜻밖의 빛이 있었다. 바로 성인용품 쇼핑몰의 작가 공고였다. 성인용품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직업이라니, 그야말로 눈이 돌아갔다.


그때 난 영어로는 글을 써본 적도 없었고, 한국어로 쓴 글이라 해봐야 학교에서 쓴 시와 소설이 전부였다. 처음으로 쓰는 이력서엔 쓸만한 이력조차 없었다. 나는 간병인 일을 개인 비서라고 바꿔 적었다. P는 원래 부동산 회사의 사장이니, 따지고 보면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고모의 회사까지 끼워 넣었다. 그렇게 온갖 거짓말을 퍼붓고 나서야 이력서 한 장이 완성됐다.


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 쇼핑몰은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커플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먼 친척의 유산을 물려받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나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들이 뭘 얼마나 알았겠는가. 게다가 ‘쇼핑몰’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그 유산이라는 것도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쓸 성인용품을 구매하고 남는 것을 가져다 팔았다. 문제는 그 성인용품들을 하나하나 구분해 이름 붙이고, 설명을 달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이 너무나도 귀찮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자면 그들은 사랑을 나누기에도 바빴기에. 결국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주고 알바를 구했고, 마침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사무실은 그들이 동거 중인 작은 아파트였다. 20살인 여자 사장 M이 나를 맞이했고, 19살인 남자 사장 J는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다. 검은 정장을 맞춰 입은 나를 보고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멋쩍어했다. 면접이랄 것도 없었다. 그들은 내가 쓰는 아이폰을 보곤 제품 사진만 잘 찍어줄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발음이 어려워서, 내가 그 이름을 정확히 말하게 된 건 그들이 임신과 함께 쇼핑몰을 접은 그날 즈음이었다.


그녀는 내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더니, 대충 그렇다고 하자 기뻐하면서 웬 상자 하나를 줬다. 그 상자에는 밧줄이나 채찍부터,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기구들까지 온갖 성인용품이 가득했다. 그녀는 말했다.


이게 나랑 J가 써본 것들 중에 최고야.
이걸 발렌타인 박스로 팔건데, 너도 써볼 수 있니?


일종의 직원 복지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맨정신일 때가 거의 없었다. 자신들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많았고, 집과 돈이 있으니 굳이 일을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작가로 들어갔지만, 대부분 모든 일을 떠맡아서 하게 됐다.


내가 그때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었다면 그 기묘한 성인용품 상자도 반가운 선물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 내가 만났던, 스무 살짜리 남자와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후 3년 동안 약 서른 번의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게 되지만, 이때는 아직 연애 초반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겐 의지할 수 없다는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첫 번째 임무는 그 성인용품들을 하나하나 직접 써보고, 뉴스레터와 상세 설명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그걸 함께 써봐야 했는데, 그는 그걸 숙제처럼 여기고 귀찮아할 게 뻔했다. 당시 A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던 그는 파티를 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인생의 가장 큰 낙인 사람이었다. 생일이면 백 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을 초대하곤 했고, 내가 하는 일엔 별 관심이 없었다.


결국 나는 혼자 그 기구들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함께 살던 사진작가 R은 당시 여자친구와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사진을 찍어 보내자 R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면서, 남는 게 있다면 꼭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아마 챗지피티라도 있었다면, 일은 한결 쉬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진 그 기구들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대체 이게 무엇이고, 또 어디에 쓰는 건지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진한 척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그만큼 기이한 물건들이었다.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진동 수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났다. 기구들의 크기를 재고 세계 평균 길이와 비교하며 짧은 동화를 쓰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내 결과물을 꽤 만족스러워했다. M은 그 물건들을 가지고 내가 남자친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난 적당히 얼버무리며, 이번 발렌타인 상자는 대박 날 거라고 말했다. M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나는 그녀의 그 음흉한 미소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쓴 뉴스레터는 그들의 친구들과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전송되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 발렌타인 상자는 10개도 채 팔리지 않았다. 그들의 친구 커플이 몇 개 구매해 주었고, 여행에서 돌아온 R이 나의 '직원 할인'을 통해 하나 사준 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의 일이 그랬다.


나는 가끔 콘돔이나 젤 같은 게 남으면 남자친구나 R에게 갖다 주었고, 그걸 제외하면 대부분은 여전히 혼자 기구들을 관찰하고 느낌을 상상해서 쓰고는 했다. 보다 보니, 결국 그게 그거였다.




그렇게 몇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들은 임신 소식을 전했다. J와 M은 곧 일을 그만두고 M의 고향인 남유럽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놀랍지 않은 소식은 처음이었다. 나는 인사를 건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아둔 돈으로 조금 무리를 해서 집을 옮겼다. R은 촛불을 켜서 축복을 빌어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새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울 줄은. 바로, 코로나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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