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환자 입주 간병인 3화

모닝 루틴: 비닐장갑 끼고 관장하기

by 우나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를 24시간 내내 돌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을 먹여주는 건 기본이고, 양치질과 치실, 속옷을 갈아입히는 일, 문자를 대신 써주는 것까지. 사소한 것 하나도 내 일이 아니었던 게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항상 그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간병인을 찾는 사이트를 거의 데이팅 앱처럼 여겼다. 나처럼 돈 없는 20대 초반의 외국인 여자애들을

입주 간병인으로 데려다 쓰는 식이었다. 검색 필터는 18세에서 25세. 외모가 자신의 취향이면 프로필 사진을 캡처해 두고, 아니라고 느끼면 가차 없이 차단했다. 그는 부동산 회사를 운영 중이라며, 엄청난 월급을 내세워 하루에도 몇 번씩 입주 간병인을 모집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긴 문장은 아이폰의 음성 인식이 잘 안 되었기에, 결국 내가 하나하나 받아 적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에게 보낸 아부에 대한 답장도 아마 S가 옆에서 대신 적어줬겠지. 그걸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비키니를 입고 목욕 시중드는 걸 거부한 뒤로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처음엔 나를 당장 쫓아내야 한다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운 좋게도 내가 한 요리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다. 그의 집엔 없는 재료가 없었고, 모든 조리 기구가 준비돼 있었다. 그렇게 나는 목욕 시중 대신, 다른 일들을 맡게 되었다.




소변줄 관리도 내 몫이었다. 그의 침실 서랍 첫 번째 칸엔 그가 쓰는 소변줄이 수십 개씩 정리돼 있었다. 그는 물을 자주 마셨고, 하루에도 몇 번씩 소변을 봤다. 그냥 휠체어를 끌고 화장실까지 데려가 바지만 내려주면 될 줄 알았던 내가 바보였다.


그는 목욕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부분에 대해 유난히 예민했다. 사실 이쯤 되선 그의 나체도 더는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환자였고 무엇보다 나에게 돈을 주는 고용주였다. 하지만 정말 거북했던 건 그가 가끔 그 부위에 대해 농담을 할 때였다. 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아꼈고, 그는 그 반응을 즐겼다.


그리고 내가 땀을 흘리거나, 기침이라도 하면 그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소변줄도 당장 버리라며 화를 냈다. 익숙해지기까지 정말 많은 소변줄을 그대로 버려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생식기 청결에 예민한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자기 몸을 직접 만질 수 없었고, 그만큼 더 민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그의 모든 행동이 불필요하게 유난스럽고,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난 또다시 습진 핑계를 대고 소변줄을 꽂을 때마다 항상 장갑을 꼈다. 그 물컹한 감촉은 그대로였지만.




그의 하루는 늘 바빴다. 어딜 그리 많이도 가는지. 해가 지기 전엔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었다. 일단 아침이면 스타벅스에 들렀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샌드위치를 고르곤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는 비싼 건 먹지 말라며 눈치를 줬다.


나는 그의 휠체어를 끌고 매일 만 보 넘게 돌아다녔다. 도시의 인도 위에서 휠체어를 미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작은 턱 하나에도 그의 몸이 통째로 흔들렸다. 그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큰 공원에 가서 몇 바퀴씩 돌기도 했다. 난 혹시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봐 늘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그렇게 하루 내내 돌아다니고 나면, 집에 와서 저녁을 차렸다.


요리를 하거나 집안을 치우다가도 그가 부르면 곧장 달려가야 했다. 그는 거의 매 순간 내 이름을 불렀다. 화장실에 있다가도 그의 고함에 뛰어나가면, 그는 얼굴을 긁어달라거나 소변이 보고 싶다는 요청을 했다. 그가 안마의자에 앉고 싶다고 하면 그를 안아 옮겼다. 180cm, 100kg. 목 아래로는 아무 힘도 없는 몸. 그를 옮기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한 번이라도 안마의자에 앉아서 안마를 받아보고 싶었지만. 그 집을 떠나는 날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어쩌다 그가 안마의자 위에서 잠들면, 몰래 발코니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그게 내가 유일하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S와도 조금씩 친해졌다. 우리는 말없이도 서로를 알아보는 사이가 됐다. S도 나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해 네덜란드에 와있었다. 내 전남자친구가 감옥에 갔고, 그래서 여기서 일을 하게 됐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S는 지금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밤이 되면 그를 침대에 눕힌 후, 물티슈를 사용해 세수를 도와주고 양치질과 치실을 해줬다. 그가 쓰는 수분 크림은 한 통에 수백만 원씩 하는 거였고,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 그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정해진 횟수만큼. 내가 실수라도 하면 그는 이게 얼마 짜린 줄 아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가 잠이 들면 나는 지하방으로 내려갔다. 가끔 그의 아들이 맞은편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담배나 대마를 피우거나 새벽에도 음악을 틀었다. 그의 아들은 간병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우리는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가난한 외국인 여자애들일 뿐이었다. 가끔은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그쯤 되자 나는 화장도 아예 하지 않았다. 또래 남자애들을 보는 일이 그렇게까지 수치스럽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난방도 되지 않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나의 방. 하지만 유일하게 혼자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불속에 몸을 말아 넣으면 애쓰지 않아도 눈이 감겼다. 그리고 그쯤 되면 그는 벨을 눌렀다. 소변이 마렵다는 신호였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그는 벨을 눌렀다.


그 벨은 내 하루 중 가장 끔찍한 소리였다. 소리가 들리면 나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그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에게 소변줄을 꽂고, 뒷정리를 해야 했다.


하루는 그 벨을 실수인 척, 거실 어딘가 두고 내려왔다. 그날은 그의 폴로 파티가 있었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경기장을 돌아다닌 후, 종아리가 퉁퉁 부어 신발조차 벗겨지지 않았다. 딱 하루만이라도 밤새 푹 자고 싶었다. 그날 밤 그는 내 이름을 밤새도록 고래고래 불렀다. 참다못한 그의 아들이 내 방 문을 발로 쾅쾅 차며 나를 깨웠다.




그렇게 잠 같지도 않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장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전까진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대변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푸세식 화장실에서 어쩌다 눈에 들어올 때나 공중화장실에서 누군가 물을 내리지 않았을 때, 그 정도. 그저 가끔 재수 없을 때 마주치는 일이었을 뿐이다.


아직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 다섯 시 반. 잠든 그의 몸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돌린다. 이때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야 한다. 그를 깨우면 안 되니까. 밤중에도 몇 번씩 소변을 보는 그는 언제나 나체로 잠자리에 들었다. 일단 그의 항문에 기구를 사용해 관장약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약효가 들 때까지 구석에 앉아 졸거나, 부엌에 가서 급하게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 조용하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그 몇 분이 가장 평온한 순간 중 하나였다.


대변을 본 후, 그는 언제나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관장약 때문인지, 건강 때문인지 그의 언제나 설사를 했다. 그걸 전부 치우는 게 내 몫이었다. 장갑을 몇 겹이나 껴도 따뜻하고 말랑한 게 그대로 느껴졌다. 그가 매운 음식을 먹은 날엔 그 냄새도 그대로 났다. 잠이 확 달아났다. 그걸 다 치우고 나면 그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잔변을 긁어내야 했다.


그렇게 하루의 첫 임무를 마치고 나면 S가 비키니를 입고 들어와 그의 목욕을 도왔다. 나는 그의 침실에

탈취제를 뿌리며 담배를 피웠다.


그가 살던 곳은 은퇴한 부자 노인들이 터를 잡은 동네였다. 내로라하는 사업가들이 살고 있었고, 거리엔 값비싼 차와 손질된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그는 밖에 나갈 때마다 내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화장은 했는지, 렌즈는 뭘 꼈는지, 립스틱은 너무 진하지 않은지.


그가 모임에 나가 투자니 부동산이니 하는 고상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언제나 그의 설사를 떠올렸다.

소변줄을 꽂을 때마다 그가 던지던 농담들. 개고기를 먹냐는 장난 섞인 비아냥들. 그의 친구들은 말했다.


이런 완벽한 고용주를 만나다니,
너 정말 운이 좋구나.


그들은 모두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에 잘 정돈된 금발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부는 푸석하고, 몸에서는 늘 대변 섞인 독한 탈취제 냄새가 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를 다른 휠체어로 옮기거나 옷을 갈아입혀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옷과 머리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바보가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간병인일 뿐이고, 이들에게 나는 그림자였다.




그의 집을 떠나게 된 건,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는 18살 된 간병인이 다음 주에 도착하니 나가달라고 했다. 내가 쓰는 지하방을 그녀에게 줘야 한다고. 그의 집에서 몇 달간 숙식을 해결하며 돈을 모아두긴 했지만, 암스테르담에서 집을 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의 집에서 일한 경험을 아예 나쁜 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웃는 날도 있었고, 평소라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보거나 먹어보지 못했을 음식들을 먹기도 했다. 그는 내 비자 문제를 도와주기도 했다. 비록 그의 성적인 조롱에 언성을 높여 싸운 적도 많고, 나도 자주 짜증을 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외로운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때, 지금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들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계획이 없었고, 충동적이었다. 그때 히피 커뮤니티를 통해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남자애가 있었다. 그는 사진작가였다. 나는 그에게조차 내가 하는 일을 부끄러워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냥 비서 일을 한다고 말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에게 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당장 살 곳이 필요해.” 당시 난 몇 달간 데이트를 하던 남자도 있었고, 어쨌거나 전남자친구의 친구들도 있었다. 하필 잘 알지도 못하는 그에게 연락을 한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는 지금은 여행 중이라며 암스테르담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답장이 도착했다. 그의 집 주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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