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 입고 목욕 시중을 들라고?
그 집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됐다. 새벽 여섯 시, 그를 깨우러 간다. 그의 방엔 커다란 텔레비전과 욕실,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가 쓰는 자동 침대와 그의 아들이 어릴 때 썼다는 침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십대 아들은 마약 중독자였다. 집에 들어오는 일이라곤 그의 돈을 가져갈 때뿐이었다. 깡마른 몸에 어딘가 꺼림칙한 인상을 가진 남자애였다.
나의 고용주. 그는 한때 부동산 회사를 운영했지만 사고 이후 은퇴했다고 했다. 통장에 넣어둔 돈에서 나오는 이자로 산다고 했지만, 전기세만 한 달에 천만 원 가까이 나오는 집에서 간병인 두 명의 월급까지 주면서 어떻게 생활이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부자인 걸까.
동료 S는 북유럽 출신의 여자애였고, 나와 동갑이었다. 신기했던 건 그에게 그녀가 꽤 틱틱댄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의 집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굴며 그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 애썼는데 말이다.
새벽 업무는 둘로 나뉘었다. 한 사람은 그의 관장을, 나머지 한 사람은 그의 목욕을 맡는다.
그는 내가 처음 왔으니 관장보다는 목욕을 돕는 게 어떻냐고 했다. 부드러운 말투였다. 나는 그걸 배려로 여겼고, 선물로 준비해 온 유카타를 꺼냈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고급 면 소재였다. 그는 무표정으로 그냥 옷장에 넣어두라고 말했다. 그에게 목욕 가운은 필요 없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의 옷장에는 그가 젊을 때부터 입었던 명품 옷들이 가득했다. 만지기만 해도 질감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웠다. 말에서 떨어진 사고 이후,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됐고 그로 인해 살이 찌고 있다고 했다. 대신 요즘은 스카프를 모으는 데 열중한다고. 유카타는 그 스카프들 사이에 구겨져 들어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옷은 평생 입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기가 내 집이었다.
S가 관장을 하는 사이, 나는 서둘러 지하에 있는 내 방으로 가서 젖어도 상관없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유튜브에 ‘전신마비 환자 목욕시키는 법’을 검색했다. 기껏해야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는 정도일 줄 알았던 내가 어리석었다. 만난 지 두어 시간 된 남자의 목욕을 시켜야 하다니.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방 문을 여는 순간, 변 냄새와 독한 탈취제가 뒤엉켜 밀려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바깥 정원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는 추위를 많이 타서 늘 두꺼운 커튼을 치고 지냈다. 그 집의 수많은 방 중, 정원이 보이는 창이 있는 건 그의 방뿐이었다. 아깝게 느껴졌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좁은 땅 네덜란드에서 창문 너머 정원이 있다는 건 특권에 가까웠으니까.
S가 탈취제를 뿌리는 동안 그는 바지를 내린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방 곳곳에 방향제와 인센스 스틱이 널려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냄새를 감추기 위해 집 안 전체가 향으로 덮여 있었다.
우리는 그의 옷을 벗겼다. 사실 이런 일은 원래 혼자서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새로 왔으니 도와주는 거라고. 나는 최대한 얼굴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 애쓰며, 바지 벗기는 법을 배웠다.
그의 휠체어는 총 세 종류였다. 평소에 늘 앉아 있는 일반형,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전동형, 그리고 목욕용.
목욕용 휠체어는 등과 엉덩이 부분이 뚫려 있어 환자를 씻기기 쉽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목 아래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그를 옮기려면, 휠체어를 고정시킨 뒤 양팔로 안아 들어야 했다. 키 180, 몸무게 100kg이 넘는 그는 힘이 전혀 없었기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중년 남자의 나체를 끌어안고 있다니. 비현실적이었다.
목욕용 휠체어는 워낙 가벼워서 특히 조심해야 했다. 그는 이 과정에 유독 예민했다. 팔에서 힘이 조금만 빠져도 욕설을 퍼부었다. 대부분 성적인 욕설이었다. S가 그에게 그토록 틱틱댔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의 욕실에는 마찬가지로 큰 창이 나있었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욕조, 개조된 샤워 부스와 그의 건강을 위해 설치해 둔 레드라이트 기기까지. 커다란 자쿠지 욕조는 오랫동안 쓰지 않아 삭막해 보였다. 그가 전신마비가 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일상은 정해진 루틴대로 흘러갔다. 한 사람이 목욕을 시키는 동안, 나머지 한 사람은 그가 매일 아침 마시는 녹즙을 만들어야 했다. S는 그 사실을 알려주더니, 친절하게도 함께 그의 휠체어를 끌어 욕실 안으로 넣어주었다. 그의 몸이 힘없이 덜컹거렸다.
나는 유튜브 영상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며 한켠에서 네덜란드어로 쓰인 바디워시를 찾아냈다. 이쯤 와서는 더 이상 그의 나체도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의 주요 부위를 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빨리 핸드폰을 보거나 음악이라도 듣고 싶었다.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도망쳐 익숙한 무언가를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그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스페인과 영국 억양이 섞인 특이한 영어를 사용했는데, 벙쪄있는 나에게 그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왜 옷을 입고 있는 거야?
목욕시킬 땐 비키니를 입어야지. 그것도 몰라?
알고 보니 목욕을 시킬 땐 간병인이 비키니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남자 간병인은 고용하지 않나요?” 내가 물었을 때, 그는 남자들은 억세서 싫다고 했다. 여자 간병인들이 더 세심하고 일을 잘한다면서. 병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이십대 여자애들을 입주 간병인으로 고용하는 이유가 혹시 이런 것 때문이었을까.
나는 비키니가 없다고 했다. 그는 얼굴이 시뻘게져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에도 그는 나체로 휠체어 위에 앉아 있었다. 샤워기에서는 뜨거운 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욕실은 열기와 수증기로 가득했고,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목욕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며, 큰 소리로 S의 이름을 불렀다. 집이 워낙 넓어 소리를 질러야만 다른 편에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그는, 그래서 언제나 소리를 내질렀다. 잠시 후 다소 당황한 얼굴의 S가 들어왔다. 그는 그녀에게 이 아시안 여자애를 도대체 어떻게 교육시킨 거냐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돈을 줄 테니 당장 비키니를 사 오라고 했다.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사 오라고.
그날 나는 S의 비키니 상의를 빌려 입었다. 평소 난 노출 있는 옷을 좋아하고 거부감도 없다. 여름이면 공원에 비키니를 입고 누워 태닝을 하는 게 가장 큰 취미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달랐다. 하의까지는 도무지 입고 싶지 않았다.
그는 스펀지는 세균이 번식해서 더럽다며, 무조건 맨손으로 씻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손에 습진이 있어서 고무장갑을 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네덜란드어로 뭔가를 중얼댔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애가 들어온 거야.”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지만 모른 척했고, 그래도 맨손으로 그를 씻기지 않아도 됨에 안도했다.
그는 특히 주요 부위를 씻기는 것에 유난히 집착했다. 그 기나긴 목욕이 끝났을 때, 나는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의 더운 방이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S가 가져온 녹즙을 매끈해진 얼굴로 받아 마시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난 생각했다. 뭐든, 이보단 낫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