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퇴거 명령을 받았다. 월세 3달치를 밀리고, 보증금까지 전부 사라진 후였다. 법원으로부터 당장 이틀 안으로 나가야 한다는 명령이 도착해 있었고, 집주인에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당시 나의 행동은, 지금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네덜란드 안에서의 취업만 고집했던 점이나 아무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않았던 점이 그렇다.
내가 가진 돈은 몇백 유로 정도, 백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이었다. 나는 페이스북에 들어가 방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쓰는 곳이고, 외곽이라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증금을 낼 돈까진 없었지만 잘 말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희망과 절망은 극한에 있을 때 꽤 비슷해 보인다.
암스테르담처럼 집 구하기 어려운 곳에서 그 정도 돈으로 이틀 만에 방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운이 좋다고 봐야 할지, 반대로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이틀 안에 짐을 싸서 나가야 하는 무일푼의 나에게 또 다른 일자리가 나타난 것이다.
고양이 돌봐주실 분
페이스북 외국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코로나 규제가 풀린 틈을 타 고향에 와 있는데, 암스테르담 집에 두고 온 고양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두 마리의 고양이 사진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조건은 단 하나. 고양이를 사랑할 것. 그리고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르니 되도록이면 집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양이가 귀엽게 생겼다는 둥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사진만 보고도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나는 그에게 엄청난 길이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거리로 나앉아야 했다. 난 남들에게 불쌍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슈가베이비 제안을 했던 그 노인이 가르쳐 준 것이 하나 있다면, 돈을 버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방법들이 언제나 정당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틀린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 선을 지키면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어떻게 네덜란드에 오게 되었고 실직과 코로나로 인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최선을 다해 썼다. 살 집이 없습니다. 구걸과도 같은 말이었다. 당장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으나, 난 이제 스물넷이 됐고 복학할 돈조차 없다고 적었다. 네덜란드에 온 후 가난은 언제나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지만 이때처럼 가난이 내게 도움이 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메시지를 보낸 후 겸허한 마음으로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노숙자 쉼터나 종교 단체에라도 갈 생각이었다. 내가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을까. 이때쯤 되자 왠지 흥분되기까지 했다. 정말 이것이 내 삶이 맞는지, 내가 이 모든 걸 직접 겪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비롭게도 더 이상 내 삶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깨끗하게 방을 청소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월세를 낸, 생애 첫 번째 집이었다.
두어 시간쯤 지나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원한다면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다.
나의 불쌍함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니. 그 사실이 약간 우습기도 했지만, 두 번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드디어 집 문제가 해결됐다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그날 밤 텅 빈 침대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일종의 첩보 작전 같았다. 고양이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의 터키인 친구가 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여자친구와 함께 다른 도시로 떠날 예정이었다. 나는 그의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그를 만나 집열쇠를 받아야 했다. 고양이 주인은 자신의 집 주소만 보내줬을 뿐, 그 터키인 친구의 이름이나 연락처는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그의 집 앞으로 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그의 친구를 기다렸다.
그의 집은 암스테르담에 산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바로 그 건물이었다. 모양도 특이했거니와 워낙 거대한 덕에 어디서든 보였기 때문이다. 전에 만났던 남자의 회사 창업주가 이 건물에 산다고 했고 건축 잡지에도 여러 번 등장한 곳이었다. 그런 건물 앞에 서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을 세계에서 온 내가 그 자리에서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인사를 건네며 지나갔다.
다행히 그의 친구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고양이 주인이 내 프로필 사진을 보내줬다고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열쇠를 건네주며,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고양이 주인이 그에게 어디까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당장 내일 집에서 쫓겨나는 처지라든지, 그런 건 말해봐야 달라지는 게 없으니. 너도 행운을 빌어. 난 말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며 돌아섰다.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부동산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텅 빈 집을 둘러보더니 갈 곳은 있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문도 열지 않은, 두 마리 고양이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나는 마지막 짐가방의 지퍼를 잠그고 열쇠를 꺼내 들었다.
월세 1,200만 원 대저택에서 고양이 키우기 2화는 이번 주 금요일에 미리 업로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