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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익준 Nov 08. 2018

나태

때때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추적거리는 날씨에 핑계를 대고 싶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으면 머리는 오늘의 나태함에 대한 이유를 지난날의 후회 속에서 찾는다. 하얀 모니터를 바라보며, 평일 오후의 방 안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데, 나 혼자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노을의 색깔에 대한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선이다. 씻지 않아도 옷을 입지 않아도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의자 위에 앉아서 손가락이나 까딱거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뻔한 푸념들이 비루한 문장이 되어 화면 위에 떨어진다. 서른하나의 무게는 서른보다 무감각하고 서른둘보다는 가볍고 안일하다. 하루가 흘러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노인처럼 텅 빈 눈동자를 굴린다. 어두워진 시간, 아파트의 창문들이 별처럼 빛난다. 그 빛 안으로는 행복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겠지. 따뜻한 밥상과 가족들의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이어지다가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제각기 잠이 들겠지. 속 사정도 모르고 마음대로 따뜻한 상상을 피운다.

다음 주쯤 되었을 땐 이 모니터의 불빛만큼이라도 밝은 빛을 보면 좋을 텐데. 게으른 머리가 또 긍정적인 생각을 만들어낸다. 소용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좋게 생각해 보았자 어차피 모르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 1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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