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방식은 각자의 몫~
무언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다른 생각이 끼어들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껴지지 않았던 신체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잘은 모르지만, 바로 거기가 아마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집중력의 한계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지금껏 집중하고 있던 그 일에 대해 한없이 큰 허무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하면서.
방금 전까지 그 안에 푹 빠져 그게 곧 나의 전부인 것 마냥 온몸을 담그고 있었던 주제에,
지금은 뭍으로 기어올라와 그게 다 뭐냐-하며 질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글은, 그런 허무함과 일종의 '질림'현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이런 날에 내가 쓰는 글이라는 건 보통, 자연스러운 흐름의 글이라기보단 그동안 여기저기에 짤막하게 메모해 놓았던 잡생각들을 펼쳐놓는 것이 주이기 때문에 다소 산만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딱히,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다기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굳이 주제를 정해보자면,
음...
아니, 주제는 아닌 것 같고,
분위기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분위기는...
대충...
'허무함'이라든가 '우울함'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펫로스 증후군과 함께 겪고 있는 나의 우울 장애와 공황 장애에 관한 것이다.
먼저 펫로스 증후군은 내가 아는 바로는, 직접적인 병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증상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고, 짐작건대 '가까운 이를 잃었을 때'에 발생하는 어떠한 감정 혹은 상태와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제 애완이 아닌 반려이고, 최근의 언젠가부터는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곧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말도 공식적으로 사용되거나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새에-알아보려 하지 않은 새에- 이미 공식 용어가 됐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나는 매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 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간혹 만나게 되는 이들 중, 나의 현재 상태를 알게 된 몇몇은 나를 보며 '그런 상태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평온하게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하고는 한다. 혹은 '너 혹시 T야?'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데,
글쎄...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일까.
보이는 것만 그래 보일지도 모르는 거고, 혹은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는 거고, 아니면 그런 척하는 걸지도 모르는 거고...
알 수 없는 일일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반박하거나 하나하나 설명하고 표현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냥, 조용히 그 상황을 웃어넘긴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하."
평온할까, 과연.
과거의 모 드라마의 대사처럼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하고 묻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쪽에 더 가깝다. 나도 어떤 날은 너무나도 그리워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별것 아닌 사소한 일상의 어떠한 장면에서 갑자기 생각이 나 우울해지기도 한다.
단지 그 슬픔에, 우울에 매어있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못 본 체하지도 않는다.
슬퍼지면 슬픈 만큼, 우울하면 우울한 만큼 그 안에서 온전히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떤 날은 보통날처럼 지낼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에는 농담에 웃어볼 수도 있게 된다.
"그런 상황이면 슬퍼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니야?"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리고 보통 이 말이 나오면, 마치 잔소리처럼 나에게 따라붙는 꼬리말이 하나 있다.
"지금 그러고 있는 거 보면 사실은 안 슬픈 거 아니야? 이렇게 잘만 돌아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시러 다니고 하잖아."
...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나의 대답은 언제나 하나다.
나는,
누군가가 소중한 존재의 상실을 경험했다고 해서, 혹은 그와 비슷한-
슬프고 괴롭고, 혹은 절망적이면서 외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평소에 해오던 일상을, 웃음을 잃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애도는 자신의 몫이지, 타인이 해주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정말로 많은 이들은 애도라는 이름으로 무신경하게 누군가의 일상을 빼앗아가고, 웃음을, 즐거움의 감정을 터부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그들 앞에서 하루 종일 슬퍼해야 하고, 하루 종일 울어야 하며, 큰 충격을 받은 이처럼 정신병적 해리 증세를 보여야 한다.
그게 그들이 말하는 '정상'이니까.
나는 당신처럼 웃어서는 안 되고, 술을 마셔도 안되며, 외출을 해서도 안된다. 모든 것은 금기이다.
나는 언제까지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어느 동정의 대상'을 연기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당신들은 내가 그래도 괜찮다고 인정해 주게 되는 것일까.
되려 묻고 싶은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당신들의 몫이 아니라 내 몫인 것일 텐데.
그러니 나는 내 삶을 살아간다.
너 T냐는 소리를 듣든, 소시오패스냐는 소리를 듣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
물론 나도 옛날과 완전히 똑같을 순 없다.
그렇지만-
변해버린 상황 또한 이제는 내 삶-일상이 될 것이고,
그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슬퍼지면 슬퍼하고, 울고 싶으면 울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눈물을 다 흘리고 나면, 맛있는 밥을 먹어보고,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보기도 하고, 위스키 한 잔을 마시러 밖에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나의 반려묘와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 생활이 삶의 한 부분으로 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부재와 함께 생활해 보는 방법을, 그렇게 배워가는 거다.
그게,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