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를 알아 간다는 것

by 이키드로우

‘아빠는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뭐야?’

‘…….’

‘살면서 잘했다고 생각하거나 뭐 가자이 좋았던 기억 같은 거 말이야’

‘……’

‘생각해 본 적 없어?’

‘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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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목에 열쇠가 여러 개 걸려있다.

‘아빠 왜 이렇게 열쇠가 많아? 집열쇠야?’

아빠의 와이프(베트남분, 새엄마라 부르기엔 뭣해서 아빠 와이프라 부른다)가

교회 열쇠라고, 교회 관리하던 때를 못 잊어서 그런 거 같다며 부연설명을 붙인다.

뭔가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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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즈음 아빠가 쓰러지셨다.

약간의 뇌출혈과 뇌경색 동시에 왔다.

교회 관리직을 은퇴하고서 6개월이 채 안되서의 일이다.

아빠는 거의 40년을 교회 관리집사로 살았다.

교회를 관리하는 일은 아빠의 정체성이다.


남자들은 은퇴 이후에 몸이 급격히 나빠지기도 한단다.

특히나 자신의 삶을 직업과 동일시한 경우

퇴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충격일 테니

몸뚱이가 살아있다고 진짜 살아있는 느낌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뇌전문 대구 굿모닝병원에서 몇 개월 입원,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아빠 와이프가 계속 아빠를 돌볼 수 없으니

경산 쪽 요양병원으로 아빠의 거처를 옮겨

요양병원에 몇 개월 입원.

조금 나아진듯하여

주간 보호센터로 이동.


1년 이상을 아빠 신경을 쓰며 지냈다.


가족이라는 명분, 맏이라는 명분으로 내가 아빠의 일들을 조금씩 맡아서 했지만

도통 유대감이 생기지 않아

신기하면서도 씁쓸하다.


아빠와 유대감을 만들어 보려 대화 같은 대화를 시도해 봤으나

대화가 되지 않았다.

이런 기회에 아빠의 삶을 돌아보고

아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건만,

아쉽게도 실패했다.

더 시도하지 않은 내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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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다치고 나면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하나는 사람이 까칠해지고 성질이 더러워지는 타입,

하나는 온순해지고 착해지는 타입.

아빠는 후자다.

원래 까칠하지는 않은 타입인데

더 온순해져서

심하게 말하면 약간 바보처럼 된 거 같다.

(그렇다고 바보가 된 건 아니다.)


생전 스킨십하지 않아 어색한 사이인데

얼마 전 아빠를 방문한 동생의 손을 아빠가 쓰담쓰담했다고

동생이 전했다.

동생도 뭔가 모를 이전과 다른 아빠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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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 관해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오늘 다 쓰기는

왠지 귀찮다.

기억을 하나하나 길어내는 것도

재능이다.


이따 아빠한테 전화나 한통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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