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나를 사랑하기.
나는 쉽지 않더라.
자존감이 높은 친구들이
자신을 잘 사랑한다는데,
46세가 될 때까지
영혼까지 끌어올린 자존감도
여전히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어릴 적 주 양육자의 태도가
자존감 형성에 중요하다는 말이 있던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독 우리 부모님들은
칭찬에 인색했었다.
딱 봐도
예능에 소질이 있는,
음악과 미술을 잘하는 아이였는데도
부모님은 어느 하나 칭찬하지 않았었다.
어른이 되어
언젠가 대화 중에
그땐 왜 그랬었냐고 내가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머쓱해하면서 대답했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네가 음악이나 미술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그쪽으로 못 가게 하려고 그랬지.‘
진로 문제는 둘째치고
그때 워낙에 부모님께 칭찬을 못 들어서 인지
지금도 나는 늘 칭찬에 목말라 있다.
이런 게 ‘애정결핍’이랑 같은 맥락일까?
생각해 보면
편하게 잘 쉬지 못하고
늘 뭔가 해내려고 하고
늘 뭔가 만들어내야 맘이 편한 건
어릴 때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했던 마음이
아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께 받지 못한 인정이
이제는 스스로에게 대한 인정으로 옮겨져서
내가 나를 좀처럼
칭찬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아, 지금 나는
부모님을 탓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지금 내 상태의 이유를
되짚어 보는 것이지.
그래서 잘 못 쉬는 것 같다.
뭐라도 해야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듯한 압박이
늘 내 속에 도사리고 있다.
‘그냥 있기’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도
‘일상’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도
그래서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뭐라도 했다는 것에 대한
안심이려나.
객관적으로 봐도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지금의 나인데.
과거로 돌아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인정도 듬뿍 받을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나답게 산다는 이야기는
나를 사랑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나를 사랑해 주는 방법이 바로
‘나를 나답게 존재하도록’
스스로 도우는 거니까.
다만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계속 발버둥 치면서
뭔가 해내려고 낑낑거리지는 말자.
뭔가 해냈을 때는
작더라도 스스로 칭찬해 주고
계속 더 뭘 해내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 법도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지만)
꾸준히 훈련하자.
가만히 있어보기,
그냥 있어보기,
밥 먹기, 멍 때리기,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등에
시간 아까워하지 않기 같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 정서를
솔직하게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피드백하자.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는 매일
나아지고 있다고 여기자.
지금으로서는
이런 방법과 훈련만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