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그리기

나다움을 완성해 가는 나만의 언어

by 이키드로우

말을 하는 것 또

글을 쓰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리고 음악을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나만의 언어’를 갖는 것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국에는 내 생각과

관점을 표현하고

쏟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면서

그 표현이 확장되어

타인과 세상을 향한

메시지로 진화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쓰기와 그리기

(그리고 굳이 더 넣는다면 말하기)인데

무작정 쓰고 무작정 그린다고

쓰는 근육과 그리는 근육이

점점 많이 질까?


요즘에 글을 쓰면서 느낀다.

어떤 날은

뮤즈가 내려온 것처럼

생각은 술술 흘러가고

글도 술술 써지며

빈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들이 자동으로 솔솔 떠오른다.


하지만 어떤 날은

완전 정반대다.

몇 줄 쓰다가 그냥 덮어버리고

그림을 그리려다가도

포기하고 그냥

작업실 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근육과 그림 근육을

키우는 것에 대한

다른 묘안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쓰고

계속 그리는 일이다.


꾸준함과 지속성 만이

글과 그림 근육을 키워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왕도가 없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의 비율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그냥 쓰기만 하면

지금의 내 글이 어디 즈음 도달해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제자리걸음을 할 위험이 있다.


쓰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읽기’에 소홀할 수 있어서

양질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려 한다.


좋은 글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높이는 것은

진짜 좋은 글들을 읽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림도 마찬가지다.

좋은 그림들을 많이 보고

내가 추구하는 비슷한 결의 그림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좋은 그림에 대한 눈을 높여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글은

한 단어로 표현하면

‘담백’한 글이다.

복잡하고 장식적인 글을 싫어한다.

히자만 그 와중에도

감칠맛이 있는 글이고 싶다.


이윤주 작가님의 에세이가

나에게는 표본이자 모델이다.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틈틈이 그분의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해본다.


그림은 사실

딱히 이렇다 할 모델은 없다.

다만 저렇게 살고 싶다,

저런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있다.

요시토모 나라.

너무 대 작가여서

감히 들이대지 못할 벽이지만

20대 때부터 좋아했다.

그분의 DVD를 몇 번이고 돌려보며

언젠간 나도 작가가 되어

저분 같은 삶을 살고 싶어 꿈꿨었다.





삶에서 그래도

따라갈 모델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복잡하고 답이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길이 되어 준다.


나의 모델들과

똑같은 길은 걷지 않겠지만

그 모델들이 길잡이가 되어

나다움을 완성하는 삶의 여정에

도움을 준다.


쓰기와 그리기를 통해

더욱 나스러운 삶을

착실히 살아가는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