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쟁이

성탄절의 부끄러웠던 기억

by 이키드로우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의 나는 부끄럼쟁이였다.


40대 중반이 되어 4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부끄럼쟁이였던 그때를 더듬어 보니

실은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인식하는 정도가 보통의 아이들보다 예민해서 그런 것이라

크게 문제가 있거나 가타부타 평가받거나

혹은 나쁘게 평가되어 혼나기까지 해야 할 그런 류는 아니었다.


사람을 마주하는 자체가 부끄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럼에 관해서는 어릴 적 다니던 교회의

성탄 발표현장이 새겨진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그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우리 집은 그다지 잘 사는 형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도 아니었다.

물론 이 생각도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 인식 속에 우리 집은 늘 돈이 없고

뭔가 사 먹거나 사게 될 때는 늘 눈치를 보게 되는 그런 집이어서인지,

아주 가난한 집이라 여겨졌다.


성탄절날 나는 ‘예.수.님.탄.생.하.셨.어.요’ 라는 글자를

한 글자씩 각각 적은 종이 중 하나를 들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무대에 그냥 서 있는 공연(?)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생뚱맞은 콘셉트인 게,

그날 그 공연의 드레스 코드는 ’ 한복‘이었다. 성탄에 웬 한복?


어렸던 나이를 생각하면 그 당시는 1980년대 후반즈음일 테니,

중요한 행사에는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그런 시대적 배경이 었었으려나?


문제는 난 한복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한복을 살 형편도 안되었던 것이다.

까짓것 한벌 사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때의 우리 부모님을 탓하는 유치한 맘은 없다)

다들 한복을 입고 왔는데 나만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인지 부분이 예민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예민한 인지능력 덕에 난 극한의 부끄럼을 느끼며

노래가 끝나는 순간까지 고개를 뒤로 돌린 채

무대에 온갖 부끄럼만을 쏟아내며 공연을 마쳤다.


문제는 공연 후,

남들 다 잘하는 글씨 들고 가만히 서있는 것도 못하냐면서

부모님(아마 아빠였던 것 같다)께 혼이 난 사건이다.


어린 나이에

내가 왜,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호되게 혼이 났었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매도 몇 대 맞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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