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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Jul 06. 2024

거룩함이 거북하다

(레1~27)

어느덧 레위기다. 그리고 레알로다가 위기다. 어제도 초저녁 무렵에 눈꺼풀이 무거워져 그런대로 눈을 감고 누웠는데 이른 새벽에 적혔을 문장은 '잠이 인연이 아닌 것처럼 또다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버렸다...'였다. 지난 일기들을 헤집었더니 벌써 한 달 넘도록 이모양이다. 진짜 죽을 것 같은데 또 안 죽을 것도 같다. 이러다 돌연 잠들게 된다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기대인지 걱정인지조차 이제는 모르겠다.


멍하니 레위기에 적힌 규정들을 쫓아내려가다 문득 아, 읽는다는 게 이토록 피곤하고 복잡한 기제였나. 눈알을 굴리고, 눈으로 확인한 내용을 곧장 마음이 따라 말하고 동시에 또 다른 마음이 듣는다. 여기에 더해 무대가 필요할 수도 있고 그림을 그려야 할 수도 있고 노래를 불러야 할 수도 있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새김질... 또 새김질./\... 아예 영화를 만들지 그러냐... 읽는다는 건... 부단한 연출이구나...


해야 한다,,, 거룩,,, 성막,,, 기름,,, 하지 말아라,,, 부정,,, 염소,,, 너희,,, 제물,,, 하지말해야바쳐말씀하셨다,,,


세뇌당할 것 같다. 너덜너덜한 나의 구름을 수많은 검은 혀들이 핥고 지나간다. 너는 모세냐, 하나님이냐, 사이비냐... 나는 꼼짝없이 당해버릴 것만 같다. 학교 다닐 땐 잘 몰랐고 세뇌, 주입받는다는 분명한 느낌을 처음 받은 곳은 군 훈련소였다. 나를 포함한 훈련병 절반은 본래 넌지시 북한보다는 미국에 두려움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이 모조리 박살 나는 데까지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었다. 몸이든 이름이든 무엇으로 구분된 분자들을 하나의 거대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목적, 적的이 필요하다. 그리고 적敵을 만드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세뇌는 존속과 이익을 추구하는 무엇에나 존재한다. 나에게든 가정에든 사회 어느 곳에든. 그것이 부정한 것일지라도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이야 말할 것 없이 많다. 뒤틀린 의지와 애욕은 사랑, 성장, 성공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재창출되었다. 사랑하고 싶다면, 성장하고 싶다면, 성공하고 싶다면 반복해서 전부를 속이고 또 전부에게 속으면 된다.


레위기에는 통치를 위한 수많은 규정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대개 하나님에 대한 정결과 부정에 대한 정의와 법들이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같은 본질적이고 윤리적인 규정도 조금은 들어 있다. 규정은 갈수록 세부적이고 세밀해진다. 숨을 못 쉬겠다. 모세와 제사장들에게는 더욱 거룩한 정결이 요구된다. 의도됐든 아니든 거룩함의 조건들이 인간을 구분 짓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모세의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모세들은 더럽고 힘든 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그들의 역할은 다른 이들보다 무겁다. 무거워야만 한다. 반드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모세가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미안하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 마치 특별한 혜택을 받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거룩하지 못하므로 그들이 오면 거룩한 여호와의 성소가 더러워지기(ㅋㅋ) 때문이란다. 실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는데 다른 백성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그리 말한 것이길 빈다. 아니야 과연 그랬을까. 그냥 정결하기에 미쳐버린 거 아니야. 모세는 어떤 놈이지. 민수기와 신명기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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