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담배 한 보룰 샀다.
이 벽돌이 마지막이다.
담배 보루를 쥐고 떠오른 것이 하고많은 것들 중에 하필 벽돌이라니... 그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벽돌을 쉬지 않고 날라온 걸까.
밖에서 안으로, 또 안에서 밖으로... 누구도 시키지 않은 노가다를 누구보다 성실히 해왔다.
이제 그만 금전을... 몸을... 마음을 축내는 일은 그만두어야겠으니 아무에게 알린다. 금연 결심은 처음이고... 아무래도 공표하는 것이... 그래야 성공 확률이 높대서.
그만두는 마당에 담배회사는 내게 상장 쪼가리라도 하나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자 '그동안 수고 많았네.'와 더불어 부상으로 딸려온 담배 한 보루가 내 손에 들려 있음이다.
지독하다.
어제 UFC 중계를 보다가 그냥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그냥 타는 것처럼 비로소 나도 뭔가를 그냥 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이제와 보니 격렬한 파이팅을 보면서 내 속에 무언가가 꿈틀,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틀거림은 새로운 무언가를 잉태하여 자라나게 하는 방향이 아닌 꿈틀댄 그 벌레를 밟아 죽이는 쪽이었다.
한다.
하지 않기를.
한다.
굳이 한 보루씩이나 더 태워야 할 이유가 있다면... 오줌 색깔 같은 미운 정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한 보루는 한 개비 한 개비에 집중해 보려는 까닭이다. 담배는 항상 들러리였지 않은가. 생각 옆에, 감정 옆에, 대화 옆에, 휴식 옆에, 풍경 옆에, 사랑은 따로 떼서 또 그 곁에... 모르긴 해도 그동안 무척 섭섭했을지도 모른다.
한 보루는 일주일이면 소화된다. 그래서 일주일간은 담배와의 추억이랄지가 있다면 담배 연기로 떠올려볼 것이고 그 뒤로는 역시 담배 연기처럼 사라진, 이별 후의 허전한... 지금은 알 수 없는 마음에 대해 얼마간 적어볼 것이다(부디 무릎 꿇고 용서를 빈다거나 집 앞까지 찾아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살아오며 먼저 떠난 기억보다는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 훨씬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먹먹함과 쓸쓸함을 늘 곁에 두고 산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먼저 떠날 수 있는 결단이랄지 용기... 어쩌면 '그냥' 같은 게 슬슬 필요하지 않나 싶고... 앞으로도 수없이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는 이별, 상실 같은 것에 더욱 담대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함께 했으니 일주일이 모자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지런히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너도 나도
너는 꺼어기 나는 이여기에서 틈틈이 반짝이며 서로 조응할 수 있지 않겠니.
생명은 끊어도, 잘라내도 어디서든 다시 자라지 않겠니.
그러니까 담배도 끊는다면 언제고 다시 싹이 날지 몰라.
그러니까 단칼에 싹둑 자르지 말고... 편히 떠나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자.
오래오래. 아주 멀리.
그런 마음으로 한 개비 태워보내며 쓴다.
(실은 신기술 때문에 밋밋하게 쪄서 내보내고 있지만... 매캐하게 바스러지는 연초의 기분을 떠올리며)
일주일이나 더 태워야 한다니 속이 탄다.
그냥 지금부터 그만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