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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귀찮고 벅찬 일을 해치웠다. 어제 문뜩 ‘해볼까?‘ 정도였던 마음이 무슨 일인지 밤새 훌쩍 자라 ’해야겠다—할 수 있겠다‘로 진화한 것이다(이상해씨-이상해풀-이상해꽃). 그 마음을 붙들고 있는 잠시에도 무더운 날씨라든가 유튜브 쪼금만이라든가 하는 유혹들이 모기처럼 달라붙었다. 즉시 움직여야 한다. 불가피하게 곧장 행동할 수 없을 때에는 모기에게 의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정신을 분할하여 주의를 빠르게 옮겨가며 각각을 예리하게 유지해야 한다. 삘이 왔을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삘은 나이를 먹을수록 지름이 넓어지기 때문에 돌아오는 주기가 길어진다. 기쁜 마음으로 나그네를 대접하듯 움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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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답서스는 여름이면 보고 있어도 자란다. 가만 보고 있으면 자라는 게 보인다. 줄기 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하필 가위가 눈에 띄어서 멋대로 잘라주었다. 자른 줄기들을 손아귀에 쥐고 있으니 뾰족한 마디눈(芽, bud)들이 손바닥을 찔러댔다.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내 귀가 잘려나가는 듯 아삭아삭 아찔한 가위질 소리. 잎을 매만지며, 조금만 참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어차피 거실을 헤매어봤자, 헤매다 지쳐서, 손이 더 필요해서, 욕심이 생겨서, 환상에 빠져서, 자손을 이어 봤자, 천국에 닿을 길은 없고, 앞서 죽은 사람의 길을 더듬어 걸을 뿐이란다. 니가 무슨 얼굴이든 다 아는 얼굴이고 다 걸었던 길이야. 거기서 거기야. 거기가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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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땀에 흠뻑 젖어 개운하다. 매 순간에 흠뻑 젖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온몸으로 소나기를 내리며 적는다. 떨어지는 게 글자인지 땀인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다. 소나기의 주인도 기분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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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을 마친 화분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누군가는 스무 개의 줄기가 기본일 것이고 육십 개의 이파리가 기본일 수도 있다. 그 다음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거꾸로 돌아가보는 것이 필요하다―나아가는 것에 생각보다 새로움이 없기도 하고―그러지 않으면 이파리 하나 떨어진 것에 온갖 호들갑 떨고 괴로워하고 절망하게 될 것이고 그 마음들이 뿌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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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들은 줄기로 모이고 줄기들은 하나의 뿌리로 모인다. 이파리에서 줄기로 거슬러가며 느껴야 한다. 줄기라는 길을 걷는 것, 걸으며 다른 이파리들을 만나는 것, 더욱 낮은 곳으로, 아래로 아래로, 가려진 약자들에게로, 그리하여 단단한 땅을 파고 들어가야만이, 그 단단한 어리석음과 관념을 오랜 시간 눈물로써 걷어내야만이, 뿌리의 환희를 껴안을 수 있다. 진정한 삶은 그다음부터이다. 그러고 나야 화분 밖으로 나올 수 있고, 화분에 물을 주는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