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밤송이

by 치카치카



산책로 밖

새파란 밤송이

떨어져 있네












드물게 요절 인물들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사인은 다양합니다. 병사, 전사, 아사, 의료사고, 비행기사고, 총격, 자살,... 그런데 아직 덜 여문 밤송이는 어쩌다 땅에 떨어지고 만 걸까요. 외부 충격 말고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아는 척 잘하는 놈한테 물어봤습니다.


자연스러운 낙과(자연 솎음): 밤나무가 한 가지에 너무 많은 열매를 맺으면, 양분을 다 키우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를 스스로 떨어뜨려. 사과나 감처럼 밤도 '솎아내기'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아직 덜 큰 초록 송이가 땅에 떨어져 있는 걸 자주 볼 수 있어.

수분 부족이나 영양 불균형: 가뭄이나 토양 양분 부족이 있으면 나무가 모든 열매를 감당하지 못해, 먼저 약한 송이부터 떨어뜨려.

해충·병해 피해: 벌레가 안을 파먹거나 병에 걸린 열매는 더 이상 키워봐야 소용없으니, 나무가 방어 반응처럼 일찍 떨어뜨려 버리기도 해.

바람·비 같은 외부 충격: 여름철 폭풍우, 센 바람, 또는 새·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건드려서 덜 익은 밤송이가 떨어지기도 하지.



사는 게 다 똑같다지만 밤나무의 처사를 알고 나니 기분이 착잡해집니다. 감당할 만치만 했어야죠. 그러고 보니 꽃냄새도 좀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무엇을 알게 됨은 세포 분열의 징조입니다. 분열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세포를 둘러싼 세포막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 익은 밤송이처럼 제때에 스스로 벌어질 것입니다.




하이쿠는 5·7·5의 운율로 읊는 정형시인데, 음수율을 어기고 글자가 모자라는 것을 ‘지타라즈(字足らず)’라고 합니다. 애도의 표현으로 사용해 봤습니다.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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