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고 마음이 뒤숭숭해져 마음에 없는데도 억지로 산책을 했다. 조금 걷다 보니 사람 탓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다. 모처럼만에 머리를 잘라서 그런 걸 거다. 삼손의 피가 내게도 흐르고 있음이다. 무엇을 믿어야 내 기분에 유리할지 헤아려본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늘 작은 기대를 품고 걷는 길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의 여파가 여직 교신을 방해하고 있다. 언제 이렇게 난잡한 구조가 돼버린 걸까. 이런 날에 영감을 바라는 건 욕심이고 대신 내게 미친 부정한 에너지와 자연이 발산하는 미지의 에너지를 상호 교환하는 느낌으로 걷는다. 원래 맨발이지만 더욱이 맨발이 필요하다. 잘 떨어지고 잘 달라붙도록. 재수가 없으면 가진 것보다 더욱 불쾌한 에너지가 혹부리영감처럼 달라붙기도 하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다음날 산책할 구실이 된다.
숲길을 걷다 보면 콘크리트 구간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언제부턴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이 딱딱하고 까끌한 콘크리트 바닥을 밟는 듯하다. 발바닥에 암만 굳은살이 배겨도 아프다. 자연스레 신발을 신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처지가 쓸데없이 불쾌하고 불쌍하다. 남들은 멋진 신발 신고 아무 생각 없이 방방 잘만 뛰는데 나는 뭐가 이리 못마땅하고 불만인지 걷고 싶은 맘이 없도다. 누구나 한평생 헛걸음을 하다 간다. 신발 속에서 피어오르는 어제의 향기에 취해 짧은 세월 욱여넣고 잘도 날은다. 그렇게 가나 이렇게 가나 뭐가 더 유리한지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