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드릴 소리

by 치카치카



절절하구나

태양도 달달 떠는

전동드릴 소리












아직 해도 나지 않은 이른 아침, 숲 한가운데를 스님처럼 박박 밀고 주저앉은 절간에서는 굵직한 파이프가 깽깽 나뒹굴고 전동드릴 총 쏘는 소리 요란합니다. 강제로 기상한 숲이 까마귀로 짜증을 냅니다. 원래는 스님들의 비질 소리가 들려야 할 시간인데요, 아쉬운 대로 비질 소리와 전동드릴 소리를 분별하지 말아 볼까요? 분별하지 않으려면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거슬러거슬러 관념이, 의식이, 태양이 떠오르기, 태양이 존재하기, 이전의 순결한 시공간, 블루아워에 잠시 머물러야 합니다.









소리/진동은 여파가 있으므로 마지막 행을 한 글자 늘려 지아마리(字余り) 했습니다.

이쯤 되니 정해진 운율을 맞추지 못하고 대충 둘러대는 게 하이쿠의 묘미가 아닌가 합니다.

젠장 계절어도 빠뜨렸군요, 급한대로 전동드릴을 가을의 계절어라고 우겨봅니다.

우기다 말고 전동드릴이 가을의 계절어인 나름의 근거를 제시해 봅니다. 가을은 수확과 잘라내기의 계절이고 전동드릴의 뚫고 깎는 소리는 벼를 베는 낫질과 가지를 자르는 가위질처럼 수확과 절단의 이미지와 겹칩니다. 따라서 전동드릴은 현대 도시를 대표하는 ‘가을의 낫’인 겁니다.

또 여름 장마가 끝난 뒤에 날씨가 안정되면서 건축/보수 공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가 가을 아니겠습니까? 전동드릴 소리는 여름 매미 울음처럼 가을 도시를 울리는 배경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휘유우...)

초이쿠(하이쿠 초고)는 ‘떠오르기도 전/ 낙엽 떨어뜨리는/ 전동드릴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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