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며칠 기억의 반죽

by 자진유리

한참을 걸어도 멍하고 어지럽드라. 밤새 중계기 떼거리가 쏘아보는 방안에 들었기 때문으로 한다. 저들이 내게 겹친 우환을 잡아 벌리려 보이지 않는 감마 빔으로 온갖 내장들을 벌벌 떨게 하니 귀를 막아도 악몽이 나드라. 그러지 말걸. 연박 손님 객실 청소한다 치고 그냥 빨래 돌리고 말걸. 그래도 푹신하긴 하드라. 라지킹 침대. 템퍼. 며칠 더 누워볼까. 이깟 악몽쯤이야. 으으. 빌어먹을 삶의 무게야. 으그극. 지진이 무서운 이유를 아시나. 발밑으로 꺼질 두려움 때문이 아니야. 머리 위로 쏟아질 수많은 과거들 때문입니다. 쏟아지는 별빛 그중에 나의 과거를 포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오늘 죽는다면 그대의 어제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하루라도 더 살길 바란다면 망할 그 핸드폰 좀 내려놓으세요.

어지러워도 산을 오르는 건(...) 삶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삶 위로 올라서려는(...) 어이구 힘들어 그러니까 무덤에서 부활할 힘을 얻기 위함입니다. 산은 삶이자 거대한 무덤이지요. 이 몸도 이제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렵게 된 모양입니다. 어느덧 쑥쑥 가라앉는 거대한 시계추가... 길따란 바다뱀이..., 발목에 칭칭 감겨 있습니다. 이 뱀은 삶 속에 묻혀서 이따금 지렁이처럼 온몸을 비트는 게 더욱 힘든 일이란 걸 압니다. 때문에 내 발목을 감싸기로 작정한 것이오. 아이 참... 난 힘든 건 정말 싫소. 더군다나 멍청해서 힘든 건 질색이오. 그래서 언젠가 이 뱀을 벗 삼아 스프링맨처럼 폴짝 뛰어올라볼 참이오. 뭔 소리냐고? 작가에게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이것이오. 뭔 소린지도 모를 만큼 어처구니없는 일을 체력, 계기, 객기, 또 뭐라도 있으면 말이오, 가슴 안에 말이오, 안될 게 없다는 말이오.

빛바랜 야광색 공무 수행 조끼를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산길 모퉁이에 참새들처럼 한 줄로 쪼그려 앉아 화단 경계목에 낀 흙먼지를 일일이 수세미로 닦아내고 있다. 그들을 한걸음 뒤에서 짝다리 짚고 내려다보고 있는 시커먼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를 나는 총총 지나친다. 머지않아 뒤통수가 뜨겁다. 화가 나는 것 같다. 안 쪽팔린가. 양쪽 다 안 부끄럽냐고. 여기 수돗가가 있고 호스도 연결되어 있다. 중년 남자 혼자 신나게 물총 쏘며 빗자루로 쓱 훑으면 금방이다. 금방 끝내버리고 저기 정자에나 앉아 담소나 나누며 할머니 할아버지 용돈 드리는 게 어렵나. 할 일이 그리도 없나. 비바람이 더 잘하는 일을 인간이 굳이 간섭해 가며 억까 부리는 게 일자리 창출이냐. 이 나라는 기운 넘치는 사람은 거드름이나 피우고 노약자는 죽을 때까지 노예를 벗어날 수가 없다.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온종일 홀로 집구석에 틀어 박혀 있지 않고 폐지 줍지 않고 눈부신 유니폼 입고 공기 좋은 산속에서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할지도 모른다. 저 중년 남성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몫은 내것이다. 나는 존나게 아무렇다 씹쌔들아. "이거 다 놓으세요, 할머니도요, 무릎 나가요. 제가 다 할 테니까 정 움직이고 싶으시면 저기 빗자루로 데크에 낙엽이나 설설 쓰세요." 씩씩대며 다 엎어버릴걸. 아, 그랬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이제 다시 {지금 여기}부터 하늘 뒤까지... 하늘 뒤서부터 여기 지금까지(장난 나랑 지금 하냐)... 개구리 헤엄치듯 가위바위보나 칩시다. 말 그대로 수축과 팽창, 날카로운 묘수까지 연마하는 겁니다. 외톨이가 되면 세 가지를 다 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누구나 언젠가는 해야 될 일이니까 돈보다 시간이 많을 때 미리 하시라는 겁니다. 미리 하면요. 수축으로도 팽창을 제압하고 가위로도 웬만한 바위는 잘게 부숩니다. 그게 법칙 밖의 진실인데요, 거기까지 도달하면요. 세상이 진짜 재미있다니깐요—(가위바위보를 수련하면... 세계의 흐름이 무엇인지 직각분별할 줄 알게 되면... 삶은 껌이지... 그러다 가위가 바위와 만나면 적수가 없고... 보재기까지 낳아버리면 서로 바라만 봐도 한 세상 신나게 논다...), (그들을 싱글 홀로 맞서는 방법은 자기를 셋으로 나누는 혼원귀멸공이 있으나 주화입마 혹은 사망 확정 루트이므로 습득을 삼가길 바람...,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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