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의 고민

by 자진유리

빨래를 널러 가는 몇 걸음 사이에는 햇살에 뉘어진 글씨 액자 하나가 통근길 지나치던 3번 출구 그 낡은 간판처럼 잔잔한 눈길을 보낸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언젠가 다락에서 찾아낸, 거기 있다고 계시받은 사도 요한의 말(내 보물 말인가?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찾아라! 이 세상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 —멀리 있지 않았다). 진리/가/너희/를/자유/케/하리라.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그 안에선 그랬다. 그로부터 2년,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심할 여지가 없음은 끝내는 쓸쓸해지는 일이었다. 체념.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느닷없는 체험은 내겐 너무 이른 게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내 삶은 전부 실속 없이 이르기만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것은 무언가를 종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굴만은 앳되고서


그런 와중에 진리의 액자가 낙관처럼 나를 쳐다본 순간이었다. 하기사 쓰르라미도 오래 해 먹었고... 슬슬 또 변신 입질이 오는데 말이지... 얘도 겨울잠은 재워야 내년에 또 활짝 기어 나오지 않겠어?

겨울에는 모두 자진하시어 유리케되시길

자진유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자진이 아니고 따로 떨어진다는 유리도 아니다. 온갖 정성을 다한다는, 스스로 나선다는 의미의 자진이고 그에 따른 有利를 말하는 것이다. 몇 번의 겨울을 홀로 보내며 겨울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니까 찬 유리야, 정지용아, 오유미 오사무야, 자진유리... 귀엽지 않냐?


내어다 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앞 잦나무가 자꼬 커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쫏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랏빛 누뤼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뺌은 차라리 연정스레히
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는 고운 화재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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