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못다한 이야기
글쓰기란(?)
양배추가 필요할 때면 적당한 지점을 칼로 어서석 가르지 않고 몸을 한 겹 한 겹 귀하게 벗기곤 합니다. 마침내 모든 겹을 다 벗기고 나면 그곳에 어떤 모습이 얼마난 크기와 강도로 웅크리거나 우뚝 서 있는지 알게 됩니다. 알게 된 남자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물에 담급니다. 며칠이 지나자 손톱 만한 새 양배추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벗기는 시공간
자라는 시공간
수많은 층위들
같은 층위 서로 다른 무수한 방향
이 모든 교통이 고작 생사로 분리되는 삶의 원통함!
양파만 하더라도 얼마나 숱한 층위입니까. 따라서 한꺼풀 안에서 다른 존재와 마주친다는 것은 기적이자 아름다운 사건이겠죠. 그러나 인간은 한편 마음만 급하고 어리석어 그 모습이 비꾸러진 열정이나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도마 위에 올려진 양파를 칼로 내려치는 모습과 닮습니다. 양파의 모든 겹이 일순 진동하며 모든 연결이 끊기고 모든 눈물만(칼을 쥔 자마저) 흐르는 커다란 고통입니다. 눈물은 이 모든 고통은 인간의 끝모를 애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구조를 압도적인 고통이자 사랑으로 꿰뚫린 다음의 인간이야 말로 그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손 내밀 수 있고 내가 어디에 있든 진실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스절약(?)
(1) 카레나 만들 요량으로 당장 먹고 싶거나 호딱 먹어치워야만 하는 채소들을 준비합니다(나는 시듬직한 시금치와 청양고추를 더했습니다). (2) 그리고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내 몸을 조금 더 움직입니다. (3) 그래봐야 앞선 내용물들을 알려진 것보다 좀 더 여러 번(납작하게) 썰어주는 것뿐입니다. (4) 채소를 볶다가 남은 양념치킨을 넣고 양념이 골고루 나눠질 수 있도록 전체가 물에 잠기도록 합니다(홍수재해는 아닙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나무주걱이 방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인은 누구이겠습니까,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5) 여기에 두부 반모를 납작하게 잘라 펼쳐 덮고(두부조림 내지는 두부두루치기 느낌) (6) 식초 몇 방울로 생명감을 더한 다음 (7) 모자란 간은 그릇에 옮겨 담은 뒤 두고두고 요긴하게 먹고 있는 멸치볶음 토핑으로 합니다.
= 치킨과 멸치볶음(멸치-견과-번데기) 궁합이 고소하니 좋았습니다. 업장에서 잔멸치를 적당히 짓이겨 튀김옷에 섞어 치킨을 튀긴다면 콘칩처럼 입천장 까지는 맛도 좀 즐기면서 나름 매니아 층이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