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키친

추억의 사라다빵

by 육순달

(...) 그래서 사라다빵의 추억이 내게도 진실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할머니 손 잡고 시장에 간 기억도 없는 것 같고(그 당시 용산에는 나홀로집에2가 생각날 만큼 되게 큰 장난감가게가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설의 용사 다간에 나왔던 '카옹'이란 로봇을 아기맹수처럼 카옹카옹거리며 갈구했던 기억은 났다), 그 시절 시장통에서 사라다빵을 본 적도 없다. 어디서 처음 봤나 한참을 더듬어 보니 당장은 오래된 동네 빵집인 것 같다. 거칠고 길쭉한 고로케빵 사이로 하얀 속이 수줍게 삐져나온. 옛적에는 빵집에서 빵과 사이다를 놓고 모임도 하고 소개팅도 하고 그랬던 모양이니 엄마아빠는 사라다빵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는지 괜히 물어나 볼까. 싶다가도 이렇듯 세대 간 공감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에 야금야금 쓸쓸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가업이라든지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 지키려는 것을 넘어 그것(기초랄지)이 우후죽순 돋아나고 사라지는 새롭고 가벼운 것들보다 왜 중요하고 좋은지 충분한 느낌을 전해주어 건강하고 끈끈한 문화가 형성되길 바라는 바이다(?). 이처럼 아름답고고고한 정신을 버리고 금세 휘발되고야마는 달고 짠 것만 호로록 삼켜대나니 나의 추억은 끽해야 멋대가리 하나 없는 국진이와 용만이, 그리고 포켓몬 빵 따위인 것이다. 빵은 심지어 빵을 잘 먹는 아이에게 흔쾌히 건네주거나 그보다는 쓰레기통에 줄곧 갖다 버리곤 했는데 나중에는 그게 참 부끄러웠다는 생각에 미쳤다가도 조금 더 지나니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옮아간다. 그런 의도로 그렇게 생산된 것들은 똑같은 의미와 방식으로 소비되는 법이니.


그래도 사라다빵을 떠올렸을 때, 없는 추억을 대신할 기분 좋은 느낌 정도는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라다빵의 친척인 샌드위치를 몹시 좋아하기 때문으로 출근길에 꼭 편의점에 들러 가능하면 계란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골라 노트북가방에 욱여넣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웬만하면 가장 먼저 출근 도장을 찍기 때문에 샌드위치 반쪽은 사내 다음이나 혹은 사내보다 일찍 온 직원의 몫으로 나누고 겸사겸사 스몰토크도 나누며 서로의 컨디션을 살피고 기분을 조절하는 식이었다(사내는 아침엔 뭘 잘 못 먹는 타입이라 혼자 두 쪽 다 먹으면 배가 너무 부르기도 했고).


그렇다면 샌드위치는 왜 좋아했나, 머리 간지러운 부분을 새로 파헤쳐 보니 그보다 이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가족은 신정 설을 쇠었는데 집집마다 음식을 준비해 와서 떡만둣국과 함께 먹었다. 커다란 접이식 나무 밥상 위에는 편육이 있었고 소불고기와 잡채가 있었고 도라지무침, 맵지 않은 김치, 그리고 새하얀데—사과, 단감, 바나나, 당근, 오이, 감자, 메추리알, 그리고 건포도라서—올록볼록 알록달록한... 사라다를 내가 진짜 좋아했다. 사라다라니 이름도 예뻤다('왕돈까스'류의 설렘이 있음). 남은 사라다는 난장판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난 뒤에 나랑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는 (종)고모들이랑 식빵에다 싸먹었다. 아무래도 이것이 샌드위치를 좋아하게 된 배경. 이만큼 돌이켜 살펴본 바 나의 사라다빵이란 역시나 그 ~추억의 사라다빵~은 아니고 사라다와 샌드위치가 낳은 조금은 돌연하고 조잡한 모습인 것이다.


<잠들다 말고 갑자기 먹고 싶어 남긴 메모>
사라다빵
양배추 오이 당근 쑥갓
햄(오리볶아논거 잘게 다지기)
케찹설탕머스마요
<실제>
양배추오이당근양파방토카이피라(상추)루꼴라
계란스크램블오리고기채
케찹설탕머스마요후추

훈제고기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특급바겐세일에 홀랑 넘어가 모처럼 사먹다가 새삼 느낀 점이 있어 곁들인다. 오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업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제품들을 팬에 구우면, 오리기름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좔좔 흘러나오는데, 그 기름을 밥그릇에 모으면, 금세 치즈처럼 굳게 되는데, 어떤 것은 색이 아주 탁한 반면, 또 어떤 것은 생오리기름(식용유 빛깔) 정도로 맑은데, 젓가락으로 찍어서 맛보면, 두 번 다신 먹지 말아야겠다 싶은 것도 있는데,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거대(유명)해질수록 탁함도 짙어지는 이치가 오리기름으로도 드러남이다. 사람이 모여(기업이든 종교든) 생성되는 탁도가 한 개인의 몸집을 넘어서면 탈이 되는 것. 작지만 작아서 정직할 수 있고 투명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삶이 더 멋있다. 이름마저 모르는 게 존나 멋있어. 유명이란 정말이지 무실이고 무색임을 햇살 먹은 겨울흰구름도 그렇다 하네.








사라다빵 후기—★

사흘째 먹고 있지만 평생째 먹을 수 있다.

냉동실에 처박혀있던 맛없는 미니소보로빵도 사라다를 듬뿍 넣어 전부 먹어치울 수 있게 됐다.

다음에는 당근 비중을 더 올리고 사라다 소스의 맛을 좀 빼야겠다(소스맛이 재료의 맛을 넘어서면 몸의 필요 이상 먹게 됨, 그게 세뇌이자 지옥행열차)

사라다빵처럼 불쑥 건포도가 땡겨서 시리얼 먹을 때 활용하는데 역시나 맛이 좋다.

그리고 그 시리얼과 건포도를 우유가 아닌 카레에 부어 먹으면 또맛있다.

당연히 건포도가 듬성듬성 박힌 빵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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