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기
섯
명상하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보고 싶은 거야.
일어섰지.
깔고 앉았던 납작한 방석 위에 곧추.
이 소재, 몰캉몰캉해서 중력분산(말도 안 되지만)이 된다고.
엉덩이 기억상실증에 아주 좋아.(개소리)
아무튼 그래서 일어서보게 됐는데
일어나는 순간 아, 하고
애기 때 처음 일어선 그 느낌이었지.
근데 말야, 눈이 깜겨 있단 말이지. 깜깜해.
몸이 자꾸 기우뚱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똑바로 설 수가 없는 거야. 어지러운 거야.
그래서 살짝 실눈을 떠 보니까 지하철에서 중심 잡는 것마냥 앞벅지를 움찔움찔하고 있더라고.
이걸 두고 뇌과학적으루다가 뭐라서 뭐다라는 건 필요 없어. 알아. 다 안다고 니 말. 그게 사실이라고 해봐야 그래서 거기에 창조가 있어? 생명이 있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냐고. 안아줄 수 있느냔 말이야. 네 논리가 고통이 발생하는 프로세스랑 똑같다는 건 알고 있어?
내가 느낀 게 중요하다고.
첫째는 이거였어.
와—진짜 지구가 도나보다.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속력을 느껴버린 거지.
또 한 가지는,
아... 서있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을 해내고 있는 거구나. 그리고 '본다'는 게 일어서기 위해서 이렇게나 중요한 기능이구나.
덜컥 캄브리아시절이 떠올랐지.
수억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똑같은 어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좀 더 그러고 서있어 봤지만 집중도 관찰도 뭣도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사람은 가만있질 못해. 움찔대다가 움직이거나 다시 주저앉아야만 하지.
서서 하는 일들은 그래서 모두 경직되고 그릇된 것일지도 몰라.
인간이 일어서게 된 게 불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일어서기 위해 얼마나 크나큰 대가를 치렀을까나.
일어서'보고' 싶다. 뭐뭐 해'보고' 싶다.
보긴 뭘 봐.
생각해'보면' 아찔해.
이 얼마나 굴하지 않는 보석같은 존재들인 게야.
이제 눈 떴으니까 가만 좀 앉아 있어도 되지 않아?
저 하늘 좀 보라구.
고백
비 온다. 나는 샤워기 아래서
나가자마자 물 한잔 마시고 화분에 물 줘야지 생각했다.
물려받은 화분들을 보살피고 있는지라 물을 주기적으로 줘야 한다.
땅이 마르지 않게가 기본. 어떤 식물이든 공통인 것 같다.
적게, 자주, 엄마가 아들 밥 먹어—하듯이.
그 마음으로 이 겨울에도 꽃이 활짝활짝 잘도 열린다.
비가 오면 얘네들은 원래 실컷 비를 맞아야 하는데 인간의 간섭 때문에 지붕 안으로 옮겨지게 됐지. 그러니까 비 온다 싶으면 밖에 내놓든가 수돗물이라도 줘야 한다고. 생수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언젠가 들었던 것 같군.
바깥일을 하다가도 비가 온다 싶으면 당장 반차를 내길 바란다. 조퇴는 그럴 때 쓰는 거야. 사유는 뭐 정직하게 화분에 물을 줘야 하기 때문에라고 쓰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어지간해선 먹히지 않겠지. 나라도 속으로 미친놈 하고 결재를 안 내줄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 마음이 갸륵할 것 같다. 고백해버릴 것 같아. /화분이 될래요 나는/ 뭐 그런 노래처럼.
때 맞춰 화분에 물 주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
자연스러운 것을 훼방 놓지 마.
구분 짓지도 말고.
그 법을, 인연을, 관계를 흩트릴 때,
그럴 때 업이라는 게 쌓이는 것 같다.
명심해.
그리고 나한텐 솔직히 말해도 돼.
뭐? 진짜라고?
그럼 내 고백도 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