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의 꿈

by 자진유리


아침일기 항목에는 별도로 그날의 활동란이 있다. 별일 없으면 스트레칭, 체조, 운동(맨몸/싸이클) 세 가지로 고정이다.


뭐든 시작하면 오래 걸려서 스트레칭만 해도 20분이나 걸린다.

... 걸린다고 말하고 있다.

숙제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귀찮고 재미없는 이야기다.


좌우지간 뭐든 오래 걸리니 마음먹기에 가장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대충 하지 뭐— 해봤자 대충 끝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얄꼬.



스트레칭은 교본이 없고 마음 가는 대로 하는 편인데 오늘은 새로운 걸 주문하길래 맘대로 하라고 냅둬 봤다.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서 장요근 같은 걸 푸는데 불쑥 허공으로 다리가 솟았다.

나는 그만 'ㄴ'이 된 채로 갓난쟁이가 발 굴리듯 놀다가 급기야 두 다리가 허공에 하트를 그린다.

모았다, 펼쳤다, 모았다, 펼쳤다.

몇 번째 모양이 가장 예쁜가.

몇 번째 크기가 가장 큰가.

더 예쁘게.

더 크게.

열일곱 번 휘적거리니 몹시 배가 땅기고 짜증이 나다가 기분이가 좋다.

역시 운동은 헛웃음만 난다.

인간은 어째서 이토록 귀엽고 멍청할까.

발로 그린 내 사랑은 어디로 갈까.

부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억지로 세 번을 더해서 스무 번을 채웠다.



누워하는 스트레칭을 마치면 그대로 몸을 돌려 엎드린다. 엎드려서는 상체를 들어 또다시 'ㄴ'을 만든다. 잠깐 딴소리를 하면, 나는 이름에 받침이 없고 날리는 이름이라 인간계에서 순탄히 지내려면 내려앉을 받침이 필요하다는 걸 차츰 알아가고 있다.


그런 김에, 또 새해도 된 김에 또다시 이름이나 건드려본다.

이번엔 받침을 만들자.

아무거나 주워다 받치면 호되게 받힐 수 있으니 조금 공을 들여볼까 하는 참에 근래 마음에 두었던 것들이 계시처럼 내려왔다.


'익흰잼' 하란다.


왜요?


'ㄱ'을 받침 한 '익'은 날개다. 아버지 끝이름에서 뗐다. 슬슬 주변에 세대 간 물질 전이가 일어나고 있는데 아버지는 내한테 뭐 줄 것 없소? 없으면 그 날개나 떼어 주고 가소.


'흰'은 스펙트럼의 모든 광선이 섞이어 눈에 반사된 빛과 같다는 뜻이 있다. 본래 내 빛에다 'ㄴ'이 더해져 더욱 안정적으로 빛나길 바란다. 또 '흰'에는 말이나 행동이 분에 넘치며 버릇이 없다는 의미도 있으니 염두에 둔다. 이건 도무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올해도 까불지 말자.


끝으로 'ㅁ'을 더해 재미를 주었다.

뭔가 할 생각이라면 첫째도 둘째도 잼있는 걸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넣어 둬.


'익흰잼'


완성된 이름을 감상한다.

내 본명이 요염하게 드러누워있다.

받침이 'ㄱ+ㄴ=ㅁ'이 되는 것도 썩 마음에 든다.

날개와 와상.

누워있는 새.

딱 내 꼴이다.

그러고는 아뿔싸

덜컥 네모 안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스로 무덤을 파다니.

그치만 누구나 쥐도 새도 모르게 스스로 무덤을 파고 네모에 갇히지.

그럴 땐 푸른하늘의 네모의 꿈이나 듣자.

됐어 몰라.

끝.

이름에 물이 없어서 아쉽지만 물 많이 마시면 됨.

끝.

물을 줄 방법이 생각났다. 한 달을 또 기다려야 한다.




다시 엎드려 허리를 꺾고 있는 나. 그 상태로 또 시키는 대로 넙죽넙죽 한다. 오늘은 허리꺾기와 팔굽혀펴기를 동시에 했다. 냉장고 문도 못 열 정도로 손목이 고장 나서 한동안 팔굽혀펴기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거라면 괜찮다. 척추기립근과 이두근을 적절히, 아니 손목이 아프지 않도록 몸이 알아서 힘을 배분하고 있다.

순간이 근육처럼 쫙쫙 늘어남을 느낀다.

스트레칭을 하면서는 내 몸 사용법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스트레칭을 마치면 곧장 체조를 한다. 국민체조 세대지만 새천년건강체조를 한다. 하면 할수록 정말 잘 만든 체조라고 생각한다. 어느새 영상 없이도, 음악 없이도 한다. 머릿속에 풍물패를 틀어놓고 한다. 느긋하게 쥐어짜고 싶으면 음악을 천천히 재생시킨다. 머릿속에 음반 진열장 하나 두고 사는 거 중요하다. 조만간 털어놓을 기회가 있을 거다.


사마의 드라마 덕분에 한동안 따라했던 오금희(五禽戱) 기공체조.


체조까지 마치고 나면 숨 돌릴 틈 없이 결정해야 한다. 곧장 샤워를 할지, 한숨 돌리고 실내싸이클을 탈지, 유튜브를 켜고 지옥의 땅끄부부를 만나러 갈지. (얼마 전 땅끄부부 돌아와서 너무 기쁘고)


땅끄부부가 도와주는 칼로리 폭파 운동은 분명 좋은 운동법이지만 따라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근융통성이 부족하면 더욱 그렇다. 글 하나도 가슴에 닿기 힘든데 몸의 진실을 영상으로 어떻게 알릴 거냔 말이다. 그들의 구호, 동작과 횟수에 나를 틀림없이 맞출 게 아니라 차라리 배경음악에 귀 기울여 보자.


나 어릴 적 할아버지는 러닝머신 위에 오르면 음악에 맞춰 발을 구르라고 했다. 너무 빠르면 2/4박자로 달리라고 했다. 운동 하나 하더라도 지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헬스장 가도 러닝 머신 뛰는 사람은 티비나 들여다 보지 스피커에 발맞추는 사람 별로 못 봤다. 젊은 사람도 설렁대다 내려온다. 티비나 볼 겸 운동하는 건가 운동할 겸 티비를 보는 건가. 주의가 어디로 향했지. 설마 나는 초천재라 둘 다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음악은 매개다. 운동도 적절한 음악과 함께 하면 더욱 바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할 필요 없다. 얼추 비슷하게 시동만 걸어도 음악에 집중하면 관절과 근육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선생의 가르침보다 뛰어난 상태를 스스로 개발하게 된다. 몸이 반죽처럼 쭉쭉 늘어난다. 몸이 알아서 적절한 자세를 찾아간다. 쓸데없는 힘이 들지 않는다. 횟수를 추가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다. 결국 춤을 추게 된다. 삶이 춤이었음 좋겠는가 뻣뻣한 운동기구에 홀로 앉아 분투하는 모습이길 바라는가.



땅끄부부가 암워킹을 시킨다. 팔이 내게서 멀어질수록 힘이 들고 열이 난다. 자주 하면 익숙해질 것이다. 그런 걸 성장이라 말하고 나도 고무대야처럼 넓어질 것이다.


넓어서 나쁠 건 없다. 다만 언제든 담을 수 있도록 늘 비워져 있어야 그릇이겠다. 과실이 가득, 오래 담겨 있으면 파리가 달라붙는다. 수시로 비우고 나눠야 할 일이다.


살면서 내가 얼마큼 커지나 시험해 볼 수는 있다.

금세 깨달을 것이다.

혼자의 한계는 명확하다.

결국 큰 그릇 하나보다 작은 그릇 두 개가 낫다.

게다가 매일 경직되어 찌그러진 고무대야를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

자기가 뭐하고 있는지 알면서 힘들다고들 그런다.

힘들다면서 꾸역꾸역 잘도 버틴다.

그대로 근육이 굳어서 영영 본래로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이다.


올해는 요가에 취미를 들여볼까 한다.

부끄럽지 않으려면 먼저 뱃살은 좀 빼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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