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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y 03. 2024

다래끼와 붉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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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두두두 세탁기가 일하는 소리를 낸다. 세탁기가 몸을 흔들면 하얀 구름이 나부끼고 나의 왼쪽 쇄골과 골반을 잇는—지름 3센치가량 되는—긴 통로가 뻥 뚫린다. 우두두두둑 하며 쏟아지는 그 길을 통해 일요일 아침의 풍경으로 건너간다.

 

세탁기 소리를 듣고 앉아 있으면 괜스레 세탁기처럼 몸통을 툴툴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나가 하면 다른 하나는 맘 편히 쉬어도 될 텐데 어째서 하나는 다른 하나를 움직이게 하느냐 하면 별수 없이 하나들이 하나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턱을 괴고 몇 번인가 하얀 구름을 눈으로 삼키고 파란 곳에 뱉었다. 세탁기는 그새 일을 끝냈는지 익숙한 노래를 부른다. 한 가지밖에 못 부르지만 똑바르게 부른다. 세탁이 잘 안 됐다고 삑사리가 난다든지 소리가 작아진다든가 하는 일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 세탁기의 노래는 이제는 소용없는 애국가처럼 동서녘을 알리지 못하고 눈꺼풀조차 조종하지 못한다.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한참 뒤 배가 고파져 부엌에 갔을 때였다. 의외로 어둠으로 보존된 땀의 서늘함은 다 된 세탁물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 뒤의 후련함은 찾을 수 없는지 박수를 만들고 수고했다는 말도 만든다. 사람은 흥얼거리며 세탁 바구니에 좋은 기분만 담아간다.


웅크린 빨랫감을 건조대에 펼쳐 널어두는 건 세탁기가 하지 못하는 일이니 다행인가, 고마운가, 당연한가, 불편한가, 무엇을 믿건 굴레 밖에서도 일어서거나 일어나야 할 때는 온다. 다만 무엇에 의한 일어섬인지만 남는데 갈수록 할 일은 줄어들고 저항할 일조차 남지 않게 된다면 인간에게는 사랑만 남는다. 분명 어떤 길로 간다 해도 인간의 의미는 사랑뿐일 것이다. ai라는 이름의 긴 몽둥이가 또다시 무언가를 두동강낸다 해도 그 몽둥이를 만들고 휘두르는 사람과 몽둥이를 겁내는 사람, 몽둥이에 맞고 나뒹구는 사람으로 갈라버린다 해도 ai라는 글자처럼 휠체어와 도우미의 모습으로 변한다 해도 권력의 망상은 이름과 모습이 달랐을 뿐 언제나 뜻하지 않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내몰아왔다. 그러다 보니 궁지에 널린 것이 사랑이며 그것은 죽음마저 아름답게 치장한다.


왼손은 거칠고 거침없고 오른손은 섬세하고 신중하다. 다루지 않고 내버려 두면 혼란과 다툼만 느낀다.



눈 회복 놀이에 흥미를 잃었고 잃었다는 것으로 흥미가 옮았다. 그러는 동안 일기에 빈 공간이 더러 있었고 그것은 언젠가의 두려움을 떠오르게 했다. 벽처럼 단단한 빛이 서있고 거기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할 때 달이 뜬다. 빛을 파헤치는 내가 벅벅 떨어져 나가고 흩어진 손가락들을 손가락으로 쓸어 모을 때 달이 본다. 나는 달이 점점 늦는 것을 본다. 손가락에 손가락을 쥐고 달을 기다리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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