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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by 무릎

입추


구름 많은 노을은 입천장을 닮았다

우리가 죄를 짓기 이전엔

입천장도 손톱처럼 투명하지 않았을까

붉은 혀가 비치는 입천장을 떠올려 봐

그것은 가장 황홀한 여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눈을 감아야만

내가 나를 붙잡을 수 있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입 안에 카약을 띄울 수 있다지만

삶은

닫은 입 다음에 또 닫은 입

밤의 카약이 자꾸 뒤로 침몰한다

오랜 허기에도

몸에 자꾸 걸리고 쌓이는 것들

당신을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시에서도 사랑은 결국 진부야

어쩔 수 없는 난파야


자꾸 노를 젓는 것들

부서진 배에서도

내리지 못하고

나아가려고 하는 것들

여름 다음에 또 여름일 줄 알고

투명이 어딘가에 있을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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