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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Nov 23. 2020

아내의 사랑

오랜만에 아내와 손을 잡고 둘이서 산책을 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아내가 먼저 산책 가자고 말을 했다. 아내가 산책 가자고 말했을 때 딸아이가 나도 같이 갈래라고 말했는데, 아내는 "엄마, 아빠만 잠깐 다녀올게" 하고 말했다.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대개는 딸아이가 같이 가자고 말하면 같이 데리고 갔는데, 오늘은 단 둘이만 가자고 말하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인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아내는 벌써 화장을 마치고 나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평소 같으면 나간다고 말하면 1시간 정도 준비 시간이 필요했는데, 10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더더욱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긴장된 산책은 시작되었다.


어색하게 손을 잡고 몇 발자국 걷는데 아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요즘 괜찮아요?"

"응, 괜찮아. 왜?"

"아니, 요즘 표정이 많이 어두워보여서....."


사실 근래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짜증이 났다. 아내는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씻지도 밥을 먹지도 않고 그대로 거실 바닥에 누워서 잠을 잤다. 이런 일들이 지속되니 아내 걱정도 되었지만, 부당한 업무 지시에 반박하지 못하는 아내도 야속했다. 가을을 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 기분이 안 좋아지니깐,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안 좋은 기분이 계속 지속되었다.


아내가 말을 꺼냈다.

"요즘, 자기를 보면 활력을 잃고 가만히 앉아 있는 나비 같아요. 예전에는 운동도 다니고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열정이 넘치던 사람이었는데, 퇴사하고 난 이후로 날개가 꺾인 나비처럼 있는 것 같아서요."

"아, 내가 그랬었나?"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당신이 벌어다 줄 때처럼 월급을 충분히 주지 못해서요. 생활비를 충분히 주었더라면, 자기가 이것저것 열심히 하고 다녔을 텐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 말을 듣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사실 내가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더 많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퇴사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아내는 지지해주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꿈을 찾아 인생 2막을 살아보겠다고 말했을 때도 믿고 지지해 주었다. 아이들도 어리고 한창 벌어야 할 나이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이 모든 것을 받아주었다.


오히려 내가 더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는 원래 식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던 사람이었다. 야채와 과일은 유기농 제품을 항상 고수했고, 고기류는 동물 복지 제품을 구매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트에 같이 장을 보러 가면 저렴한 식자재를 카트에 담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일이 힘들더라도 내가 조금만 더 참고 일하고 있었더라면, 아내가 예전처럼 부담 없이 장을 볼 텐데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영 안 좋았다.


아내의 말에 내가 답변했다.

"내가 미안하지. 내가 갑자기 회사를 관두는 바람에 자기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아니에요. 자기가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내가 다니는 직장이 더 수월하잖아요. 게다가 당신이 지난 10여 년간 우리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요."

어쩌면,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할까? 마스크만 없었더라면, 아내 입술에 입을 맞출 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게 펼쳐진 샛노란 은행나무길을 걸으면서 앞으로 어떠한 미래가 우리 앞에 놓이든 이 사람과 같이 걸어가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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