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ian 손주부 Nov 28. 2020

#63 마흔이 넘으면 벌어지는 일

이웃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마흔 이후에 나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작가님은 세월이 흐를수록 꽃이 좋아지셨고, 아침잠이 없어지셨으며, 감성이 풍부해지셔서 눈물이 많아지셨다고 했다. 그 글을 읽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요즘 나는 하루에 한 번씩 Snow Fox (꽃집 이름)에 간다. 그리고 예쁜 꽃 들을 바라보면서 “우와 진짜 예쁘다”를 계속 남발한다. 청승맞게 회색 츄리닝 차림의 40대 아저씨가 꽃집 앞에서 입을 헤벌리고 여고생 감성으로 돌아간다. 벌린 입은 마스크 덕분에 가려져서 다행이다.


나는 분명 전생에 여자였음이 분명하다. 요즘 들어 꽃들이 너무 좋다. 살림 사니깐 그릇들도 좋아진다. 음식을 망친 날에는 예쁜 그릇에 담아낸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와 하면서 정말 잘 먹는다. 사람이나 음식이나 "외모지상주의"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서점에 간다. 가는 길에 꽃집을 항상 들려서 5분간 꽃들의 행복한 기운을 듬뿍 받고 서점에 간다. 맨날 꽃집에 와서 꽃은 안 사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가니 주인 언니가 싫어할 만도 한데, 싫은 내색을 안 비치신다. 꽃집에 일하시는 분들은 전반적으로 친절하신 것 같다. 꽃의 행복한 기운을 받아 친절해지신 것일까 아니면 친절하신 분들이 꽃을 좋아하는 것일까?

 

마흔이 지나면서 소식가가 되었다. 소식가가 된 것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다. 이젠 많이 먹으면 위장에서 "야! 그만 좀 X 먹으라고!!!"하고 소리를 친다. 원래, 나는 음식을 사랑하는 대식가였다. 지금은 너무 말라서 주변에서 살 좀 찌우라고 난리지만, 30대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제발 좀 그만 먹으라고 말렸다. 한 때 몸무게가 피크에 달했을 때는 0.1톤에 가까웠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안주 귀신인 나와 술 마시는 것을 싫어했다. 술은 안 마시고 안주발만 세운다고 타박했다. 그래서, 맘 편히 술 먹을 수 있게 나랑 똑같이 안주발만 세우는 녀석들과 마셨다.


마흔이 넘으면서 더 이상 많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젠 조금만 과식하거나 느끼한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너무 불편하다. 특히 기름에 튀긴 음식인 탕수육이나 양념치킨은 내 몸이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최고로 사랑했던 음식과 결별해야 했다.

 

마흔이 넘자 또 달라진 점은 점점 기계치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옛날 아날로그 감성의 물건들이 좋다. 똑같은 책인데도, 전자책으로 읽으면 책 읽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종이로 된 책을 한 페이지씩 손으로 넘기면서 읽어야 책을 읽은 것 같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엄마는 내게 항상 이런 질문을 했다.

“손주부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드라마 녹화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거야?”

어린 시절, 이런 질문을 엄마로부터 받으면 '엄마는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모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그냥 비디오테이프 넣고 리모컨에 있는 이 빨간색 버튼만 누르면 돼!"

 

그런데 요즘 나는 초등학생 딸아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딸아! 아빠가 찍은 동영상에 자막 넣는 거 어떻게 하는 거야?”

초등학생 딸아이는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묻는 거지'란 표정으로 가르쳐준다.


마흔이 넘으면서 예전보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속도로 시간이 가면 금세 40대 중반이 되고 50대가 될 것 같다. 얼마 전에 뇌과학자의 책을 읽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과학적 근거를 발견했다. 나이가 어릴 때는 뇌가 쌩쌩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많이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동영상으로 따지자면, 초당 60장의 장면을 뇌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뇌의 성능이 떨어져서 같은 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현격히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띄엄띄엄 주변을 인식하게 되고 이에 따라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게 된다고 한다.


다행히도, 뇌과학자가 뇌의 노화를 늦추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일단, 잠을 충분히 자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커피를 마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을 풍부하게 만들면 뇌에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안 마시던 커피를 요즘 아침마다 내려서 열심히 마시고 있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서 커피 필터지에 담고 92도씨 정도 되는 물을 핸드 드립으로 천천히 내린다. 신선한 원두가 따뜻한 물을 받아 기분이 좋다고 봉긋하게 꽃을 피우면, 그 꽃이 가라앉지 않도록 천천히 물을 나선 모양으로 부어준다. 다 내려진 커피에 뇌에 좋다는 MCT 오일 한 스푼과 버터 한 조각을 섞어서 함께 마신다. 아침에 이렇게 커피 한잔 내려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잔에 담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아내가 이렇게 놀린다.

"오~ 작가 Feel 나는데?"

 

마지막으로 마흔이 지나면서 산책이 좋아졌다. 어렸을 때는 격렬한 운동을 좋아했다. 20대 때는 축구를 즐겨했고 30대 때는 농구를 즐겨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농구 동아리에 가입해서 꾸준히 농구를 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가자 농구하고 난 다음 날 몸에서 이상 증세를 보내기 시작했다. 무릎이 너무 아팠고, 허리 통증도 심해졌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나는 사랑하는 농구와 이별을 했다.

 

새롭게 사귀기 시작한 산책은 여러모로 좋다. 일단, 아무리 많이 사랑해도 다음 날 무릎이 아프지 않다. 무엇보다 산책을 하면 글감이 머릿속에 잘 떠오른다. 떠오른 글감을 까먹지 않기 위해 휴대폰 메모장에 열심히 적어둔다.


오늘은 드디어 주말이다. 주부에게 있어 주말은 업무강도로 따지면 평일만도 못한 날이다. 하지만,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날인지라, 주말이 되면 온 세상이 행복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물론 일요일 저녁이 되면 이 행복한 기운이 암울해지긴 하지만.... 게다가 아내도 직장에 나가지 않기 때문에 같이 집안일을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리고 혼자 걷던 산책로를 아내와 손깍지 끼고 함께 걸을 수 있어 좋다.  



Photo from 강춘성

작가의 이전글 아내에게 돈 아끼면 벌어지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