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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Dec 01. 2020

#66 남의 눈치 따위 보지 않는 딸

오늘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아이가 온라인 학습을 할 때 옆에서 나는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아빠, 숙제로 영어 단어 게임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 좀 해줘"


잠시 글 쓰는 것을 멈추고 딸아이의 자리에 가서 영단어 게임을 시험 삼아해 보았다. 한글 단어가 하늘나라에서 떨어지는데, 땅에 닿기 전에 한글 단어에 해당되는 영단어를 타이핑하면 점수를 얻는 게임이었다. 빨리 치면 칠 수록 점수가 높아졌고 땅에 떨어지면 점수가 깎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 하기에는 한글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서 다소 어려워 보이는 게임이었다.  


게다가, 게임이 끝나고 나면 본인의 점수와 이름이 학교 전체 게시판에 자동으로 게시가 되었다. 점수가 낮으면 쪽팔리기 딱 쉬운 게임이었다. 이런 게임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시키는 영어 선생님도 원망스러웠다. 딸아이에게 시범을 보인다고  로그아웃을 하고 (점수 기록이 게시판에 남지 않도록) 게임을 실행했다. 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초등학교 3학년 영단어 게임에 목숨을 걸듯 타이핑하기 했다.


"먹다"

"EAT" "정답!"

"밀다"

"PUSH" "정답!"


정답을 맞힐 때마다 "띠리링"하는 효과음과 함께 정답표시가 뜨고 점수가 올라갔다. 그렇게 약 3분간 혼신을 다해 모든 단어를 풀었다. 그리고 게시판에 올라온 다른 학생들의 점수와 랭킹을 확인했다. 충격이었다. 미국에서 4년, 회사에서 14년 동안 영타만 치고 살았기에 속도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코흘리개로 깔본 초등학교 3학년 생들의 절반 가량이 나와 비슷한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태어나서 영타라고는 연습해 본 적이 없는 딸아이가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자판에 검지 손가락 두 개를 꺼내들고 독수리 타법 자세를 잡기에 불안은 더 커졌다. 시작 신호와 함께 딸아이는 첫번째 문제인 "먹다"의 정답인 EAT를 두 검지 손가락으로 열심히 쳤다. 20점 획득! 계속해서 쏟아지는 다른 단어들에 반해  딸아이의 독수리 타법은 속도가 느렸다. 초반에 얻은 20점을 전부 다 까먹으면서 결국 최종 점수 빵점을 기록했다.


나는 딸아이가 걱정되었다. 대부분의 반 친구들이 학원 선행학습을 통해 한타는 물론 영타까지 마스터하고 대부분 백점을 받았는데, 딸아이만 빵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대신 시험을 쳤을 거라고 믿어보지만, 사실 요즘 아이들은 타자 학원도 다닌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딸아, 친구들 점수가 너무 높던데, 아빠랑 영타 연습 좀 해본 다음에 영단어 게임 다시 해볼래?"

"아빠, 내가 단어 뜻을 몰라서 틀린 게 아니잖아."

"응, 그렇지."

"그러면, 선생님께 단어 뜻은 아는데, 타이핑 속도가 느려서 빵점이 나왔다고 말씀드리고, 아빠랑 나중에 영타 연습하면 되지!"


딸의 이 말을 듣는데, 어찌나 나 자신이 부끄럽던지.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걱정했는데, 너는 네 실력이 낮은 것을 걱정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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