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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Dec 04. 2020

#68 엄마의 글씨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기쁜 일이 있을 때 보다 힘들고 슬픈 일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엄마야"하고 외치나 보다. 부모님 잘 만나서 평탄한 길을 걷던 내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군대 훈련소 시절이었던 것 같다. 2001년 겨울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 도중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논산 주변을 행군하고 있었는데 "어머님 은혜"가 적힌 표지판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부르다 보면 항상 마지막 부분에서 스승의 은혜로 바뀐다.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우는 거라며, 감정을 꽁꽁 싸매고 살았는데 일단 눈물이 터지면 멈추질 않는다.


엄마가 돌아가셨던 해에 개봉한 "헬로우 고스트"라는 영화가 있었다. 차태현 씨가 주연한 영화인데, 그냥 심심풀이로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고 봤다가 고생했다. 차태현 씨를 쫓아다니던 사람들이 사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 아빠, 형아의 영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대성통곡했다.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또 생각나서 울었던 모양이다.


평소 나는 감정을 숨기고 사는데 익숙했다. 항상 기쁘고 밝은 모습만 주변에 보여줬다. 어두운 모습은 보여줘 봤자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정말 세상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 같다."


칭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 말을 통해 평소에 감정을 잘 숨기고 살아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숨기고 있던 감정이 얼마 전에 또 터져버렸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보겠다고 책장을 열심히 정리하다가 오래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의 제목은 김초혜 시인의 "어머니". 이 책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 생신 선물로 드렸던 책이다. 그때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 생신인데, 용돈으로 어떤 선물을 사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집 근처에 있던 교보문고에 갔다. 어머니와 연관이 있는 책을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머니"라는 시집을 발견했고, 안에 내용은 보는 둥 마는 둥하고 서둘러 결제를 하고 집에 와서 포장을 했다. 생일 카드를 작성하고 어머니께 선물을 드렸다. 어머니는 너무 기뻐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책을 거의 매일 읽으셨다. 그리고 읽으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사준 시집에 너무 감동받으셨나?'


그렇게 잊혔던 그 책을 얼마 전에 책장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다. 그간 이사를 여러 번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책장에 살아남아 꽂혀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책장을 한 장 씩 넘기는데 당시 어머니가 왜 눈물을 흘리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책은 시인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써 내려간 시집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나의 선물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당시 돌아가셨던 어머니(외할머니)가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리워서 우셨던 것이다. 단지 제목과 예쁜 표지만 보고 선물해 드렸던 책이 어머니의 그리움을 자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어머니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그 시집이 어머니를 잃고 난 지금 묵직하게 다가왔다. 어릴 때는 읽어도 가슴의 울림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고 어미 잃은 사람이 되고 나니 시가 주는 울림이 예전과는 너무 다르다. 그렇게 시집을 읽다가 시집 안에 쓰인 엄마의 글씨를 발견했다.


"1995년 8월 10일 아들 손주부가 준 선물"


엄마의 글씨를 보는 순간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직도 살아계신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선물을 받고 너무 기뻐서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선물 받은 날짜를 책에 써 놓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그 글씨를 보면서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또 뜨거워진다.


어머니 (김초혜)


한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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