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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Dec 07. 2020

결혼만 하면 행복해질 것 같지?

지금은 결혼 13년 차로 결혼은 현실임을 잘 알고 있는 40대 아저씨다. 하지만, 총각시절 나는 결혼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이런 상상을 했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뽀얀 피부의 아름다운 아내가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내 아내라니! 아내가 자는 모습만 봐도 너무 행복하고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아내가 좀 더 잘 수 있도록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아내를 위해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바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예쁜 커피잔에 담고 베이글과 함께 베드 테이블에 내어놓는다. 그리고 아침 키스로 아내를 깨운다.


"자기야, 아침 먹자!"  


총각시절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며 가끔씩 "씩" 미소 짓곤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1년 후 아이가 태어나자 로맨틱했던 아침은 사라지고 묵직한 현실이 다가왔다.


뜨거운 아침 햇살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밤새 모유 수유하느라 피곤에 쩌든 아내가 입 벌리고 침 흘리면서 자고 있다. 아이를 낳고 아내는 아름다운 여자에서 강한 엄마로 바뀌었다. 곧이어 그녀 삶의 우선순위는 자신과 남편에서 아이로 바뀌었다.


분유 먹이면 편할 텐데 아이를 위해 모유수유를 고집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매일 밤 3시간 간격으로 아이가 깨서 잠을 설쳤다. 트림을 제대로 안 시켜주면 먹은 것을 게워내는 아이 때문에 아내의 몸 이곳저곳에 구토 자국이 남아 있었다. 기저귀에서 뿜어져 나온 응가 냄새와 시큼한 구토 냄새가 적절히 믹스되어 아내의 옷과 머리에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같이 식탁에 앉아서 우아하게 밥을 먹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직까지 결혼 안 한 마흔 넘은 친구가 가끔씩 이런 질문을 한다.


"결혼하면 정말 그렇게 좋아? 행복해?"


그럼 난 무조건 이렇게 대답한다.


"당연하지! 그러니깐 너도 빨리 결혼해! 그리고 널 쏙 닮은 아이를 낳도록 해!"


나 혼자만 고생할 수는 없다. 물귀신 작전이다!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는 한국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전화 한 통이면 (지금은 클릭 몇 번이면) 수많은 종류의 음식이 배달되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여름이면 맛있는 냉면을 먹고 싶었고 겨울이면 오뎅바에서 뜨끈한 어묵 국물을 마시고 싶었다. 야채 없이 페퍼로니만 있고 크기만 큰 피자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피자빵 끝에 고구마 무스가 들어있는 불고기 맛 피자가 먹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오고 15년째 미국에 못 갔더니 미국이 너무 그리워졌다. 미국에서 먹던 인 앤 아웃 햄버거가 그립고, 남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공부만 하면 되던 시절이 그리웠다.


먹고 싶으면 먹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는 자유로운 삶이 그리웠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자 함께하는 행복이 생겨 좋았지만 혼자 살 때 누리던 자유로움도 그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나 자신이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니 총각시절이 그립고, 한국에 오니 미국이 그립고, 회사를 때려치우니 회사 다니던 때가 그리운 것을 보니 난 참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다시 미국에 돌아가고, 이혼하고 혼자 살게 되더라도 현재에 만족 못하면서 과거의 삶을 그리워하며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생활에도 직장생활에도 안식년이 있으면 좋겠다. 10년에 일 년 정도는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자유롭게 지내다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질 때 즈음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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