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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Dec 16. 2020

#76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한 이유

학창 시절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공부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 선생님은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연도나 왕의 재위 순서 같은 것을 외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외울 수 있는지 암기 스킬 같은 것들을 배웠다. 예를 들어 조선왕들의 재위 순서를 외우기 위해 "태정태세 문단세~"같은 시조를 알려 주셨다. 시험 성적은 잘 나왔어도 이렇게 공부하니 역사가 재미없었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역사였건만,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관심이 생겼다.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서 보는 건축물과 그림들은 아무런 지식 없이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최근에 보기 시작한 해외 드라마 "베르사유"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루이 14세와 관련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절대왕권 강화를 위해 힘썼다는 것 밖에 아는 것이 없었는데, 조사하면 할수록 재미난 이야기들이 나왔다.


루이 14세는 아버지가 사냥터로 쓰던 늪지대, 베르사유(파리에서 남서쪽 22Km)에 궁전을 지었다. 궁전을 짓기 위해 매년 약 3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한 번에 7,000명 정도가 잘 수 있었고, 궁전 안에는 오페라 극장, 카지노, 무도회장이 있었다. 왕은 자신의 위대함을 뽐내기 위해 귀족들을 베르사유에 초대했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왕실 예절 지침을 만들고 손님으로 초대된 귀족들이 이를 따르도록 했다. 예컨대 왕과 같이 식사를 할 때는 항상 모자를 벗어야 한다든지 하여 은연중에 왕의 권위를 느끼도록 만들었다. 루이 14세가 의도한 대로 귀족들은 베르사유에 머물면서 온갖 향락과 사치에 빠져들게 되었다. 자기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극장에서 오페라도 관람하고, 카지노에서 도박도 하고 무도회장에서 춤도 출 수 있는 베르사유가 훨씬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귀족들을 베르사유에 중독시킨 루이 14세는 두 번째 작전에 들어간다. 귀족들 간의 과시적 소비를 부추겨서 베르사유에 출입하는 상인들의 부의 축적을 도왔다. 남들보다 더 비싸 보이는 보석을 목에 두르고, 더 화려해 보이는 옷을 맞춰 입기 위해 귀족들은 끊임없이 소비를 했다. 여기서 많은 소득을 올린 상인들의 돈은 소득세란 명목 하에 루이 14세에게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결국에 귀족들은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베르사유에 계속 오기 위해 귀족들은 왕에게 일자리를 요청하기 시작했고 왕은 귀족들이 수치심을 느낄만한 직을 만들어 귀족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볼일을 보고 난 왕의 뒤를 닦아주는 일이라든가 아침에 왕이 세수를 할 수 있도록 세숫물을 받아 들고 있는 일들을 만들었다. 당시 왕은 장이 비워져 있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설사약을 자주 복용했다고 하니 왕의 뒤를 닦아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인 현재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본가들은 온갖 광고를 통해 노동자들의 과시적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주말에 롯데 백화점 명품관을 지나가다 보면 명품가방과 옷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명품을 살 여력이 충분한 진짜 부자들은 혼잡한 주말에 쇼핑하지 않는다. 백화점 문을 닫은 이후에 여유롭게 쇼핑을 한다. 주말 아침부터 샤넬백 하나 사기 위해 대기하는 젊은 남녀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없고 부자처럼 보이려고 하는 사람만 많은 세상이다. 젊은 남자들은 원룸 월세에 살면서도 할부로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일부 여성들은 이런 남자가 부자인 줄 알고 만남을 시작한다.  


진짜 부자인 자본가들은 회사를 세우고 자기의 엉덩이를 닦아줄 똑똑한 인재들을 영입한다. 매월 주는 두둑한 월급으로 자본주의라는 베르사유에 중독시킨다. 자본주의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베르사유에 중독된 사람이 많아져야 잘 굴러간다. 소비를 하지않고 아끼면 경제가 침체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온 이유중에 하나가 소비를 하지 않아서다.


41살에 회사를 때려치운 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루이 14세인 자본가에게 더 이상 종속되기 싫어서였다. 화려했던 베르사유 생활이 가끔 그립기도 하지만 더 이상 직장 상사의 엉덩이를 닦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밥만 먹고살아도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루는 뽀로로다.)


누군가는 돈이 없으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드니 덜 행복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데,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도 역설적으로 행복감이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70년간 이뤄진 하버드 대학교의 행복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조건은 정말 단순 명쾌하다.


"행복해지려면 내가 좋아하는 가족, 친구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살면 된다."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베르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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