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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Dec 25. 2020

7. 각방 쓰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만 30살에 결혼을 했다. 30년간 침대에서 혼자 마음껏 뒹굴 거리면서 살다가 결혼 후 아내와 한 침대를 쓰니 너무 어색했다. 솔직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방귀가 마려워도 낄 수 없었다. 나의 방귀로부터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꼈다. 소리라도 들릴까 봐 변기 물을 내리면서 괄약근을 조절하며 가스를 방출시켰다. 게다가 나는 잠잘 때 몸부림이 심한 편인데, 아내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똑바로 시체처럼 누워 자려고 노력했다. 결정적으로 총각 시절 때는 매일 밤늦게 까지 감자칩과 맥주를 마시면서 밤새 미드를 보았는데, 결혼 후에는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결혼 생활이 점점 지속되면서 아내와 같이 자는 것이 익숙해졌다. 한 이불 덮고 자는 것도 익숙해졌고 밤에 자다가 중간에 꺴을 때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뭔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가끔 해외 출장 가서 혼자 자게 되는 날엔 옆에 아무도 없음이 어색해서 아내 대신 베개를 껴앉고 자기도 했다.


20년 6월부터 전업주부가 된 이후로 직장 생활하는 아내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내가 직접 아이들을 재우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는데, 10월부터 갑자기 아내가 자청해서 아이들을 직접 재우고 싶다고 했다. 자세한 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요새 직장에서 야근도 많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어 그런 것 같았다. 잠자는 시간만큼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대개는 아이들을 재우고 난 다음 안방에 와서 같이 잤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아이들 침대에서 바로 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그 빈도수가 점점 많아지더니 11월에는 한 달 내내 안방에서 잠을 자지 않고 아이들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나면 피곤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했는데,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니 아내가 나와 같이 자는 것을 일부러 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음 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에도 아이들 방에서 자는 아내가 점점 야속해져 갔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각방 쓰는 것을 좋은 쪽으로 보면 어떨까? 우린 지금 결혼을 안 한 상태고 우리는 룸메이트처럼 그냥 한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 다음날 나는 바로 안방을 총각 시절 내 방처럼 꾸미기 시작했다. 거실에 있던 컴퓨터 두 대 중 한 대를 안 방안에 옮겨 놓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농구화와 농구공을 서랍장 위에 예쁘게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밤마다 아내를 기다리는 대신 총각 시절처럼 침대에서 캔 맥주를 마시며 밤새 미드를 시청했다. 그렇게 혼자서 자는 것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침대에 대자로 넓게 자기도 하고 방귀가 마려우면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 부부간의 "사랑의 의식"도 자연스레 사라져서 걱정이 살짝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아내에게 강요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총각으로 돌아가 한 달 간을 자유롭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안방을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자기야, 안방이 점점 20대 총각 방처럼 변해가고 있는데? 옷방에 있는 화장대를 안방에 놓아도 될까?"

점점 남성화되어가는 안방을 보며 아내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네, 알았어요. 자기 뜻대로 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날 밤부터 아내는 아이들 방에서 더 이상 자지 않고 내 방(아니, 안방)에 와서 잤다.

"미안해요. 안방에 와서 자야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아이들 재우다가 그냥 아이들 방에서 잠들었네."

"아니야, 뭘 그런 걸 미안해 하나. 내가 애들 재워야 하는데, 자기가 대신해 주니 미안하고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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