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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un 23. 2020

살림 사는 남자가 어딜 외출이야!

가모장적 가정에서 살아남는 법

갑자기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손주부, 오늘 뭐하냐? 시간 괜찮으면 역삼역으로 나와 같이 저녁 먹자."


1년 만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지만 바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친구야, 잠시만 기다려봐, 와이프님에게 여쭤보고"


내가 돈 벌고 아내가 살림 살던 시절 난 전형적인 꼰대 아저씨였다. 내가 정의하는 꼰대라 함은 돈을 번다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정말 재수 없는 가부장적인 남자였다.


아내가 어쩌다 한번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면, 눈치를 주었다. 그뿐 아니다, 아내가 편히 놀지 못하게 애들을 시켜서 전화를 했다.


"엄마 언제 들어와? 엄마 보고 싶어~"


지금 난 180도 반대의 입장이 되었다.

아내가 돈을 벌고 내가 살림을 산다.


과거에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오늘처럼 친구 만나러 간다고 말하는 게 진심 눈치 보인다. 물론, 아내는 너무너무 착해서


"자기야, 친구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 하고 말하지만,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발걸음이 편치 않다.


살림 살다 보면, 남자들만의 우정, 소주 한잔, 뭐 이런 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회사 당길 때는 부서 회식과 친구, 동기들과의 술자리가 참 많았는데, 살림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뚝 끊겼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마실 수도 없고 코로나가 심해지고 나니 먼저 술 마시자고 말하지도 못한다.


친구와 약속 장소에 나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집안 청소와 저녁 식사를 아내의 취향에 맞추어 잘 차려놓는 것이다. 아이들 목욕까지 미리 씻겨 놓으면 베스트인데, 요즘 아이들이 저녁 식사 후 춤추고 놀기 때문에 목욕을 시켜놔도 말짱 도루묵이다.


와이프가 먹을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서 내가 과거에 얼마나 가부장적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번 느끼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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