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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Dec 28. 2020

긴 병에 착한 남편 없다.

친한 친구 아버지가 차를 끌고 밖에 나가셨는데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안 돌아오신다. 친구는 너무나도 걱정이 되어서 아버지께 전화를 수차례 해 보지만,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그리고 결국 전화기 배터리가 방전되었는지 연락 두절되셨다. 친구의 아버지는 당뇨를 앓고 계셨기에 친구의 걱정은 더 커졌다. 끼니를 놓칠 경우 저혈당 쇼크가 와서 의식을 잃거나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5시 경이되었을 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아닌 어떤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안녕하세요, 여기 경기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전화드립니다. 아버님 여기에 잘 계시니 빨리 모시러 오세요."


친구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버님께서 운전 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법을 잊어먹으셨다고 했다. 평소 자꾸 깜빡깜빡하던 아버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정밀 검사 결과 치매로 밝혀졌던 것이다. 하필 운전 중에 치매 증상이 심해져서 집으로 어찌 돌아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신 모양이었다. 자동차의 기름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운전을 하시다가 경기도 인근 시골 마을에서 자동차가 멈췄다고 한다. 천만 중 다행히도 마침 지나가던 아저씨가 아버님을 발견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치매가 온 친구 아버님은 그 일을 겪은 이후로 충격이 크셨는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주로 계셨다. 집에 주로 계시다 보니 운동 부족으로 몸이 점점 안 좋아지셨고, 결국에는 걷지도 못하시고 항상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시는 상황까지 되었다. 평소 어머님이 아버님을 간호하시고 친구는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에 아버지를 간병했다. 그렇게 대소변을 못 가누시는 상황이 점점 길어지자 가족들도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아버님 또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자신의 몸 상태가 너무나도 싫고 슬프셨던 것 같다. 비록 치매에 걸리셨지만, 가끔씩 정신이 돌아오시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시던 아버님은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다.   




3년 전에 도쿄로 가족 여행을 갔다. 도쿄를 제대로 느껴보자며, 2주일 간의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쿄 공항까지 간 후 지하철을 타고 예약한 호텔까지 갔다. 저녁때 즈음 도착한 우리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컵라면 하나씩을 먹고 일찍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밝았다.


"자기야, 나 허리 통증이 심해서 못 일어나겠어!"


아침에 아내는 극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하더니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아내가 잠을 잘못 자서 허리가 아픈가 보다 하고 조금 더 누워 있으라고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내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날 밤 둘째를 재운다고 아내가 업고 다녔더니 허리에 무리가 갔던 모양이다. 호텔 프런트에 아내의 상태를 설명하고 파스를 받았다. 그리고, 인근 정형외과의 위치도 확인했다. 아내는 무서워서 일본에 있는 병원은 못 가겠다면서 그냥 호텔에 누워서 허리가 나을 때까지 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일본에서  아내의 병간호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둘 다 30대의 나이였지만, 마치 80대에 죽음을 앞둔 노부부처럼 호텔에서의 호스피스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내게 말하면 나는 아내를 안고 변기까지 갔다. 아내는 똑바로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볼일을 보는 내내 내게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볼일을 마치고 나면 내가 닦아 주었다.


그렇게 삼일이 지나니 아내의 몸에서 땀 냄새가 났다. 목욕을 시키다가 아내가 쓰러질까 봐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신 후 아내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목욕을 끝낸 후 건조해지지 않도록 로션을 발라 주었다. 아내는 목욕을 하지 못해 찝찝했는데,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니 너무 고마워했다.


4일째 되는 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마법에도 걸리고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날개 달린 녀석을 직접 만져보았다. 아내의 교육하에 조심스레 날개 부분의 스티커를 떼어내고 속옷에 부착도 해보았다.

 

간호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내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해서 성심 성의껏 아내를 돌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간호가 10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부터는 나도 점점 힘들어졌다. 아내를 침대에서 들었다가 놓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허리와 무릎이 아팠고, 호텔에만 오래 있다 보니 두 어린 딸아이들도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져 갔다.


아내는 이런 나의 심경을 읽기라도 한 듯 12일째 되는 날 이런 말을 했다.


"자기야, 이제 혼자 화장실 갈수 있으니깐 아이들과 같이 어디라도 좀 다녀와요. 일본까지 왔는데, 병간호만 하는 당신이 너무 안쓰럽고 내가 미안해서 그래요."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내 또한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를 호텔에 놔두고 아이들과 같이 인근 놀이공원으로 갔다. 아내가 나갔다 오라고 해서 나오기는 했는데, 호텔에 두고 온 아내가 계속 생각이 났다.


"애들아, 엄마가 너무 걱정돼서 그런데, 이제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 그 대신 아빠가 저기 있는 인형 사줄게."


어린 딸아이들은 인형을 사준다는 말에 신나서 인형 하나씩 집어 들고 기쁜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갔다.


아내는 다행히도 출국 전날인 13일째 되는 날 허리가 다 나았다. 출국날 까지 아프면 공항까지 어찌 갈까 걱정이 되었는데, 아내가 나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지난 2주 동안 병간호를 하면서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먼 훗날 아내보다 내가 먼저 아파 눕게 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하는 아내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냥 내 성격인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친구에게 부탁해서 조용히 스위스로 날아가 혼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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