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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an 08. 2021

#87 카레에 대한 아픈 추억

태어나서 지금까지 두 명의 여자와 같은 집에서 살아봤다. 첫 여인은 어머니이고, 두 번째는 아내다. 같이 살아본 결과 여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 집안 청소를 중요시하는 타입이고, 두 번째는 청소보다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것이 중요한 여자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요리보다 집안 청소가 중요하신 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리정돈, 빗질, 물걸레질을 하셨다. 하지만, 요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고 주말에 몰아서 일주일치 요리를 하셨다.


반대로 13년 동안 같이 산 여자인 아내는 청소보다 먹는 것이 중요한 타입이다. 집안 방바닥에 먼지가 좀 쌓이고 머리카락들이 돌아다녀도 잘 견딘다. 하지만,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은 참을 수 없어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주일 내내 같은 음식 먹는 게 당연한 것으로 알고 지냈는데, 아내는 요리 잘하시는 장모님 밑에서 끼니때마다 다른 음식을 먹으면서 컸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끼니마다 항상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 되었다. 아내를 닮은 두 딸아이도, 같은 음식을 연속으로 주면 화를 낸다. 그래서 항상 먹다가 남은 음식은 버리기 아까워하는 내 차지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카레를 자주 만드셨다. 곰탕 끓이는 용도의 대형 냄비에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양의 카레를 만드셨다. 처음 먹을 때는 정말 맛있는데 5일째 되는 날 남은 카레를 먹을 때는 정말 고역이었다. 야채들은 너무 여러 번 데워서 물러있었고, 카레는 수분을 잃어 오랜 변비 후에 나온 응가 마냥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머니가 요리에 별 관심이 없으셔서 동생과 나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요리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익힌 요리 기술은 대학 가서 혼자 자취를 할 때 빛을 발했다.  


만 20살이 되던 해에 미국행 비행기표 한 장, 100달러 지폐 세장, 그리고 검은색 이민 가방 하나를 끌고 유학길에 올랐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미국 유학 보낸다고 부모님은 집을 파셨다. 그렇게 유학비를 마련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돈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그래서 학비와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미국, 일본 친구와 합작으로 식재료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내가 있던 로간이란 곳은 아시아 사람들이 거의 없는 시골 지역이었기에 아시아 사람을 위한 식재료를 구하기 정말 힘들었다. 김치를 구하기 위해서는 2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해야 구할 수 있었고, 월마트에서 파는 카레는 엄청나게 비쌌다. 한국에서 2천 원 정도 하는 카레 가루를 월마트에서는 9천 원에 팔고 있었다. 월마트가 다른 물건은 다 싸게 팔면서 이렇게 수요가 적은 제품에서는 큰 마진을 붙여서 팔고 있었다. 시장 조사를 마치고 우리는 어느 정도 수요가 있는 고체 카레와 포키(일본 빼빼로)를 먼저 팔아보기로 했다.


캘리포니아 아시안 식재료 전문 도매상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가격 견적을 받고 주문을 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물건이 오는 동안 주변 친구들에게 홍보도 시작했다. 우리가 조만간 카레와 포키를 수입해 오는데 구매하고 싶냐고 물어보았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대환영했다. 게다가 카레를 많이 먹는 인도 유학생들도 점차 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사업 성공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초기 주문 후 2주 뒤에 물건이 도착했다. 창고를 빌릴 돈이 따로 없어서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안에 도착한 카레와 포키를 잔뜩 쌓아놓았다. 이미 사전 홍보를 통해서 카레에 대한 선주문도 많이 받아 놓은 상태였고, 내일 수업시간에 물건을 들고 가서 인도 학생들과 아시아 학생들에게 카레를 팔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날이 밝아왔다. 팔 물건들을 잔뜩 캐리어에 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애들아, 너희들이 선주문했던 카레 가져왔어!"

인도 학생들과 아시아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물건을 받아보자 마자 한 친구가 인상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손주부, 이거 소고기 맛이잖아!"

"응, 맞아 Beef Flavor야! 가장 맛있는 카레지!"


Beef Flavor를 내 입으로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아, 맞다! 인도 사람들은 소고기를 안 먹는데!'

닭고기 맛 카레도 있는데, 덜컥 소고기 맛 카레만 수십 박스나 주문했던 것이다. 좌절감이 몰려왔지만 정신을 차렸다.

'걱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우리에겐 맛있는 포키가 있지 않은가!'

인도 학생들에게 카레 대신 포키 과자를 홍보하고 포키를 열심히 팔았다. 그런데, 포키를 구매하고 포장을 뜯은 한 인도 학생이 내게 말했다.

 

"손주부, 포키 과자가 녹았다가 다시 굳어서 떡이 되었어!"


빼빼로처럼 따로 떨어져야 하는 과자가 운송 중에 녹았다가 굳어서 하나의 대형 포키가 되어 있었다. 이건 뭐 쌍쌍바도 아니고 조심스럽게 갈라서 먹어야 하는데, 고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원래 운송할 때 냉장 기능이 있는 트럭으로 운송을 했어야 하는데, 운송비 절감한다고 일반 트럭으로 운송한 것이 화근이었다.


"손주부, 나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내 돈 환불해줘"


솔직히 같은 반 친구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떡진 포키를 팔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많은 포키와 카레를 전부 다 수거했다. 그렇게 수거한 포키와 카레는 어찌했을까?

 

어찌하긴, 그 해 내내 끼니때마다 카레를 먹었다. 디저트는 물론 포키다. 날 불쌍히 봐주신 교회 사모님들이 많이 구매해 주셔서 1년 만에 끝났지, 안 그랬으면 졸업할 때까지 카레만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레를 보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솟아오른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1년 내내 카레만 먹은 아픈 추억으로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이건 감정의 먹먹함이 아닌 소화가 안돼서 오는 먹먹함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오늘 카레를 만들었다.


'아, 정말 눈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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